AI가 내 일을 대신하면, 나는 정말 자유로워질까?
최근 회사에서 유행하는 뼈 농담이 있습니다.
‘우리 팀 신입사원 새로 뽑았어.
GPT-3는 퇴사했고 오늘 입사한 GPT-4!’
예전 같으면 신입들이 일주일 내내 매달려야 했던 시장 조사, 데이터 정리, 보고서 초안 작성 같은 일들, 솔직히 이것만 누가 대신해 주면 살 것 같던 그 귀찮은 잡무들을 이제 AI가 몇 초 만에 끝내버립니다.
팀장들은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입사원을 상대하느라 때아닌 눈칫밥을 먹곤 했습니다. 싹싹하고 일 잘하는 AI가 신입을 대신하자 업무도 빨라지고 괜한 마음고생도 사라져 만족했습니다. AI 때문에 실무자들은 잡무에서 해방되고, 관리자들은 비효율에서 해방된 겁니다.
하지만 너무 쉽고 달콤하다면 뭔가 수상한 겁니다.
“그럼, 이제 새로 들어올 인간 후배는 영영 없어지는 건가?”
“나중에 내가 팀장이나 임원 됐을 때 회사에 로봇만 남아있는 거 아냐?”
이런 꽤 정확한 예측을 다들 하게 되죠.
AI가 만든 해방이 당장엔 놀랍고 기쁘지만, 그 뒤에 어떤 청구서가 숨어 있을지는 감이 잡힙니다.
『돈키호테』에는 기분 좋은 해방이 몰고 온 뜻밖에 사건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돈키호테는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죄수들과 우연히 만납니다.
“인간이 노예처럼 묶여 있다니! 이건 부당하다!”
정의감에 사로잡힌 묻지 마 기사님은 경비 부대를 물리치고 죄수들을 풀어 줍니다. 얼핏 보면 용감한 기사가 부당하게 끌려가는 약자를 해방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해친 죄인이었고 나라가 정한 절차에 따라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돈키호테는 쇠사슬과 채찍이라는 눈앞 풍경에 정의의 기사라는 자신의 신념을 무차별적으로 투영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최대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돈키호테가 말합니다.
“해방된 죄수들아! 이제 가서 내 연인 둘시네아에게, 내가 얼마나 위대한 기사인지 전해라.”
하지만 죄수들 입장에서는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당장 멀리 도망쳐야 살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돌을 던져 돈키호테를 넘어뜨리고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밑도 끝도 없는 해방은 또 다른 불안을 낳을 뿐입니다. 죄수들은 여전히 죄수였고 이제 돈키호테도 정의의 형제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조건만 풀어주는 해방은 그냥 책임 없는 방치일 뿐입니다.
AI가 약속하는 노동해방도 이 상황과 비슷합니다.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신념을 이 세상에 밀어 부치고 있는 빅테크의 일부 대표들은 지루한 일과 위험한 일을 AI와 로봇이 모두 대신해 준다는 말만 합니다. 그 일이 가졌던 숨겨진 가치와 그 일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뉴스 들어봤을 겁니다. “이제 위험하고 귀찮은 일들은 AI가 다 해 준다.”, “인간은 창의적인 일만 하면 된다.”, “결국 AI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할 것이다.” 이 말만 들으면 우리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출퇴근 없는 곳이 천국이라면 이 세상이 천국으로 바뀔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래처럼 질문하면 분위기는 금방 지옥처럼 바뀝니다.
“내 일이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살지?”
우리가 신입 시절 겪었던 그 짜증 나는 반복 업무들을 떠올려 보세요. PPT 템플릿을 밤새 수정하며 야근할 때, 사실 우리는 디자인과 색깔만 고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지루한 시간 사이사이에 우리 조직이 움직이는 은밀한 맥락을 읽었고, 선배의 피드백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머리를 배웠습니다.
일이 손에 익고 헛점이 눈에 뜨이는 건 대단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그런 시시한 시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사람과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빚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의 아우라는 깔끔한 결과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인 갈등과 화해의 단층이었으니까요. 지루하고 위험한 일 안에는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는 숙련의 경로와 사람에게 삶의 리듬을 가르쳐주는 훈련의 층위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째로 건너뛰고 AI가 주는 정답만 받아 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남들보다 손쉽게 보고서를 쓸 순 있겠죠. 하지만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버티는 뿌리 깊고 생명력 넘치는 사람은 되기 어려울 겁니다. 왜일까요? 지혜는 효율이 아니라 인내에서,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AI는 우리를 어떤 일에서 해방해 줄 순 있지만, 그 일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나만의 이야기까지 만들어 줄 순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기득권일 수도 있는 ‘내 입장’에서 느낀 불안입니다. 이제 개인의 불안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지로 시선을 넓혀볼까요. AI 도입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결국 이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일을 없애고, 기회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지금 당장은 나에게 해당 사항이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나도 AI 자동화로 사라질 1순위 직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너무 억울하지 않은 규칙’이 필요합니다.
이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입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어떤 조건으로 태어날지 전혀 모른다 해도, 지금 만들려는 이 규칙에 합의할 수 있는가?”
상황을 회사로 바꿔 보죠. 오늘의 연차, 직급, 연봉을 전부 가린 채, ‘내가 신입이 될 수도 있다’는 조건에서 회사의 AI 전략을 설계하는 상상 실험입니다. 내가 신입일지, 경력직일지, 대체될 위기의 직원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AI의 도입 방식을 정한다면 우리는 정말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신입의 경험은 생략해도 돼.”
“배울 기회는 줄어도 효율이 더 중요해.”
아마 망설여질 겁니다. 내가 신입이 되었을 때 올라가야 할 ‘성장의 사다리’를 내 손으로 걷어차는 꼴이니까요. 예전엔 힘들어도 한 칸씩 올라갈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다리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이제 신입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자녀들이 대신 겪게 될지 모릅니다.
이 문제는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숙제를 AI로 한다고 합니다. 에세이를 통째로 쓰게 하거나, 수학 풀이를 시켜 답만 베껴 적는 식의 사용이 점점 흔해지고 있습니다.
숙제를 하는 이유는 답을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찾는 훈련과 함께 답을 찾는 과정을 견디고 조정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나의 근육은 자라지 않습니다. 생각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의 근육도 힘들고 귀찮더라도 내가 직접 겪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AI가 그 과정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편해질 수는 있어도 건강해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AI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너무 깊이 들어와 있고, 앞으로 더 많이 쓸 겁니다. 다만 질문을 바뀔 필요는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처리할까?”가 아니라,
“사라진 경험이 만들었던 가능성과 단단함은 무엇일까?”로 말입니다.
신입이 하던 반복 업무를 AI가 가져갔다면 그 빈자리는 진짜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다른 교육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4장에서 말했던 인문학적 해석력과 통계 독해력도 그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AI가 만들어 낸 이익이 소수의 성과급으로 끝날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재교육과 새로운 역할을 위한 기회로 이어질지도 자동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사회적 분배는 철저히 선택의 문제입니다. 몇몇 경제학자와 정책 연구자들은, AI가 만들어 낸 생산성 증가가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기본소득이나 AI 배당 같은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합니다. AI가 일을 대신하는 만큼 기본소득이나 최소 안전망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직업을 통해 느꼈던 성취감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현재 직업에서 새로운 직업으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눈치 게임만을 고집한다면 AI는 해방이 아니라 각자 도망의 지름길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불안하지 않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도망쳐야만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겠지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얼 선택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AI로 이루고 싶은 사회는 일을 안 하는 사회가 아니라, 실패해도 불안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라는 걸 잊지 않아야 돈키호테식 해방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교육, 소득 안전망, 전환기 지원 같은 제도들이 AI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