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식당 화장실에서
황금색 샹들리에.
우아한 클래식 음악.
세련된 옷, 고급스러운 안경, 있어 보이는 반지와 손목시계.
그 모든 걸 맘껏 즐기는 곱게 접힌 주름과 여유 있는 미소들.
보증금이 10억이 넘고, 매달 500만 원 이상 관리비를 내야 한다는 서울 도심에 실버타운.
이곳 식당은 가성비 좋은 뷔페로 유명하다.
누구에게는 가성비가 좋은 곳이겠으나
내 입장에선 어지간해선 엄두도 못 낼 고급 식당이다.
각양각색의 산해진미를 마구 쓸어 담던 내 위장은 결국 탈이 났다.
일분일초가 아쉬웠으나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화장실로 향했다.
시원했다.
나가자마자 대게 다리부터 요절낼 테다, 각오를 다졌다.
리듬감과 박동감이 어우러진 오래된 일처리가 끝날 무렵,
칼날 같은 질타가 들렸다.
언니, 한 시간이나 어디 가 있었어?
미칠 뻔했어. 1층 화장실이 꽉 막힌 거야.
듣자 하니 청소 여사님들의 대화였다.
물을 내리자마자 다시 신호가 와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대화를 더 듣게 되었다.
간신히 뚫었더니, 똥이 계속 올라오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울컥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고고,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언니 원망했네.
설날부터 고생했어, 언니.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입맛이 싹 가셨다.
식당으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의 입과 손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저렇게 큰 입과 배를, 그동안 어떻게 못 봤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아하지도, 세련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게걸스럽고, 천박하고, 저렴했다.
그건 거울이었다.
정확하게 나의 입과 배를 확대해 보여 주는 거울.
누구는 먹고, 누구는 치우는 일에
이유란 게 있긴 할까?
우린 어쩌다 이런 시대에 살게 되었나.
아니, 이렇지 않은 시대가 있긴 했나.
집에 돌아와 TV를 켰다.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사람이 화면에 나왔다.
15일째라고 했다. 지난주 그 매서운 추위에도
저렇게 텐트를 치고 거리에서 굶었단 얘기다.
홈플러스가 문을 닫으면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무려 10만 명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죽은 아이들을 위해 차례를 지내는 장면도 나왔다.
홈플러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이 그 차례상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어려운 사람끼리 연대하는 것이
그래도 삶에 힘이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양력과 음력, 한 해에 두 번씩 새해를 맞은 지
벌써 백 번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확실해지는 건 이것뿐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새해에 맞는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