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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Aug 24. 2021

올케가 매일 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올케라는 분이 끝순 할매 집에 매일 온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치매 걸린 시누이가 뭐 예쁘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는 걸까. 게다가 끝순 할매의 오빠, 그러니까 매일 출근하는 올케의 남편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지 않았나. 생전에 세 분 사이가 남다르셨나 보다. 햇병아리 사회복지사는 자기 올케와의 사이를 생각하니 부끄럽고 부러웠다.

    

끝순 할매는 오늘도 화장을 짙게 하셨다. 

주민등록증엔 김희동이라고 되어있지만, 할매는 자신의 이름을 끝순이라고만 기억한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었던 정다운 이름을 들으면서 가느라 질 대로 가느라 진 삶의 끈을 붙들고 있다. 누가 끝순이라고 불러주면 자기를 애정 깊게 불러주었던 사람들이 떠올라 좋다.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부르면 아빠가 생각나고,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가 부르면 엄마가 생각났다. 끝순 할매는 이름 속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 

     

끝순이란 이름과 함께 모진 삶을 견디게 해 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그 이름은 숙이다. 숙이는 끝순 할매 어릴 적 고향 친구 이름이다. 숙이는 장티푸스를 앓다 죽었다. 어른들은 숙이의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모두 태웠다. 끝순이는 숙이 냄새가 난다며 달라고 울었지만, 돌아오는 건 매 질 뿐이었다. 끝순이는 숙이가 보고 싶어 매일 무덤에 갔다. 무덤엔 묘비가 없었다. 대신 들꽃이 많았다.  

    

끝순 할매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숙이를 부른다. 

이제 숙이는 강아지 인형의 이름이 되었다. 끝순 할매는 자기 입술처럼 숙이 입술도 붉은 립스틱으로 화장해 준다. 화장이 하나 끝날 때마다 할매는 우리 숙이 참 곱다며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그러다 갑자기 굵은 눈물을 뚝뚝 쏟는다. 


내가 죽으면 우리 숙이 불쌍해서 어쩌노. 우리 숙이는 누가 돌보노.      


올케는 매일 오지만, 사실 할매는 올케를 알아보지 못한다. 

할매에게 그녀는 크게 소리 지르는 사람, 그래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화가 잔뜩 난 올케는 오자마자 장롱을 옮기고 장판 바닥을 꼼꼼히 살폈다. 베개 속도 뒤집어 깠다. 노련한 요양보호사는 햇병아리 사회복지사에게 그 이유를 알겠느냐고 어둡게 묻는다.     


모르겠어요. 왜요?

뭔 얘길 들은 게지.

무슨 얘기요?

돈!     


얼마 전 할머니 앞으로 재난지원금이 나왔다. 

이 돈을 놓고 끝순 할매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몸싸움을 벌인 이가 바로 올케다. 올케는 조카가 돈을 몰래 찾아서 할매 집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올케는 쌍욕도 거침없이 해댔다. 올케는 끝순 할매 귀에 대고 묻고 또 물었다.    

  

돈 어디 있어?     


끝순 할매가 숙이를 꼭 안고 불쌍하다고 하자, 올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면서 숙이를 빼앗아 멀리 던졌다. 끝순 할매는 비명을 질렀다. 어른들이 태웠던 숙이 옷가지가 보였다. 할매는 얼른 인형을 주워 들고 호호 불어 불을 껐다. 인형은 아무 말도 없었다.

      

올케는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갔다. 

치매 할머니 많이 먹어봤자 똥만 많이 싼다는 게 이유다. 올케는 요양보호사가 사 온 팬티형 기저귀도 비싸다고 난리다. 올케는 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는 것도 반대다. 할머니가 빨리 죽어야 반지하 단칸방 전세금을 가져갈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올케가 매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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