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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r 15. 2024

열등감: 동생

최초의 열등감 

"엄마는 만약에 우리 삼 형제 중에 하나만 낳으라고 한다면 보미만 낳을 거지?"

보미는 내 여동생의 이름. 우리 형제는 삼 남매다. 나, 여동생 보미,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다. 그녀와 나는 서로 가족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외모를 각각 아빠와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동생이 더 예쁘다는 얘기다. 



"어머, 너랑 하나도 안 닮았다. 되게 매력 있다." 

늘 듣는 얘기다. 어린 시절, 온 친척이 모이는(특히 능글맞은 삼촌들이 수두룩한) 행사에서는 꼭 이런 얘기가 오갔다. 

"보미는 진짜 우예 이렇게 예쁘노. 날~씬하고. (순간 나를 의식하며) 그래도 아름이는 성격이... 좋다." 그렇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성격이 좋은 아이로 대표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못했다. 결국 그런 놀림(?)에 못 이겨 꼬맹이의 미친 분노를 발산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능글맞은 삼촌들의 농담이 끝나곤 했던 것이다. 



사실은 성격마저 여동생이 더 좋았다. 무던하고 차분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의 여동생을 이렇게 정리한다. '너무 순해서 아픈데도 누워서 눈만 꿈뻑이고 있는 아이. 그래서 뒤통수가 납작해진 아이.' 그래서 내 뒤통수는 어떠냐고? 나는 다행히(?) 뒤통수가 너무나도 예쁘다. 남편이 말하기로 나는 '아버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딸'이다. 우리 아빠의 성격은... 생략한다. 





이런 차이는 크면서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보미는 예뻤다. 여러모로. 나는 아니었다. 다양하게. 그래서 엄마에게 실없이 이런 소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만약에 우리 삼 형제 중에 하나만 낳으라고 한다면 보미만 낳을 거지?"

자식을 낳고 보니, 엄마라면 절대 한 아이를 고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되묻는다. 왜냐하면. 정말. 보미는 예쁘고 어느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딸이니까. 심지어 내 이름은 '아빠 친구'가, 남동생 이름은 '큰아버지'가 지었지만 '보미'이름 만은 엄마가 정성껏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그래서 결국 나는 성인이 되어 '아빠 친구'가 지은 성의 없는 이름을 개명하고 말았다.)



보미가 예쁜 아이인 것은 나에게 싫은 일은 아니었다. 너무도 어려 동생이 귀찮았던 순간을 제외하고 동생은 나에게 매번 자랑하고 싶은 존재였다. 부러운 사람이었다. 물론 그만큼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은 내가 단단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녀의 모든 선택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태어난 시골을 떠나 지금 그녀는 서울에서 캐나다인 남편과 카페를 하며, 그녀가 늘 그랬듯 참을성 있고 즐겁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해변의 봄, 엠마: 해외여행에서 매번 시꺼먼스가 되어 돌아오는 동생, 그리고 그것마저 부러운 나.





우리는 그렇게 다르게 자라서 지금 나는 마흔, 동생은 서른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 우리는 서로 이를 잡아주는 형제 원숭이처럼 서로 새치를 뽑아준다. 그렇다고 내 어린 날의 심술과 고약한 심보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늙어 가는 지금은 나도 동생이 예쁘다.

내 부족했던 과거를 사과한다.(네가 너무 잘난 탓이야.) 그리고  나 역시 동생에 대한 내 열등감을 청산하였다.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졌다. 너무도 익숙하게. 

'뭐, 어쩌겠어. 나도 저--- 구석 끄트머리 정도는 괜찮은 딸이겠지.(제발)'  



마지막으로 미안해, 엄마. 여덟 살 땐가. 보미는 인형 선물 받았다고 더 큰 인형 사달라고 깽판 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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