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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r 19. 2024

매주 일요일에는 반성을 하자

어른의 반성

첫째 아홉 살. 둘째 여덟 살. 

우리는 아직 함께 잔다. 

첫째는 늘 씩씩하게 혼자 잘 수 있다고 하지만 내 팔베개 없이는 잠이 오지 않고, 둘째는 어디에 있건 엄마가 근처에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다. 

남편은 이제 그만 아이들끼리 잠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보통의 엄마가 그렇듯 분리불안은 나에게 있다. 나도 아이들과 잠드는 시간이 좋다. 

'잠 좀 자라, 잠 좀 자. 너 자면 배달시켜 먹어야지' 아이들이 잠들고 혼자 몰래 야식 먹는 시간을 즐기던 그때 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셋이 조르륵 누워서 쑥덕거리는 이 시간이 좋다. 


"엄마, 걔는 나랑 결혼하고 싶은가 보지?" 아홉 살 첫째. 

"오늘 언니랑 자. 내 침대에서 안 자도 돼. 엄마가 옆에 있는 게 느껴져. 그러면 나는 잘 수 있어." 여덟 살 둘째. 

매번 둘이 동시에 말을 해대는 통에 어느 하나의 말을 흘려들을까 봐 정신을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좋다. 




어제는 둘째 아이가 받아쓰기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었다. 화요일에는 영어 단어 시험과 중국어 단어 시험이 있는데, 늘 그렇듯 둘째는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놀며 뛰며 노래처럼 부르던 철자도 이미 자기 전엔 잊어버리고 없다. 결국 영어 5개 단어 중에 3개만 겨우 외울까 말까, 중국어 단어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책을 덮었다. 1번은 공부보다는 자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며, 2번은 더 붙들고 있었다가는 나도 화가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독 받아쓰기를 힘들어하고, 나 역시 받아쓰기하는 날마다 예민해져서 이런 날은 조금만 힘들어도 서로 날을 세운다. 


"이제 늦었어. 그냥 한 번 읽어보고 자자." 


어떻게 해야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뒹굴뒹굴 잠자리에 누워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낸다. 


"윤아, 우리 일요일마다 중국어 공부를 하자. 윤이가 먼저 엄마한테 중국어를 가르쳐줘. 그럼 엄마가 먼저 받아쓰기를 할게. 그다음은 엄마가 윤이한테 가르쳐줄게. 그리고 윤이가 받아쓰기를 하는 거야." 

언제든 엄마의 선생님이 되고 싶은 둘째는 대찬성이다. 

그러다 문득 첫째가 말한다. 


"엄마 나는 뭐 해?"

"글쎄. 뭐 하고 싶어?"

"일요일에는 반성을 할래. 일주일 동안 잘못한 걸 반성하는 거야." 


나는 반성이라는 말에 뜨악했다. 쪼꼬만 한 아홉 살이 반성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반성하면서 자신의 안 좋은 점들에만 집중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음.. 그래. 그럼 반성한 것만큼 잘한 일도 생각해 보자. 잘한 일이 훨씬 더 많을 거야. 엄마도 같이 반성할게." 

"엄마는 반성할 게 없어. 엄마는 어른이잖아." 


그 말에 나는 또 2차로 뜨악했다. 우리 꼬맹이는 어른은 왜 반성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어른이, 엄마가 반성할 것이 훨씬 더 많은데. 너희는 그냥 그대로 자라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그동안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너무 몰아세웠나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는 무엇 하나를 지적하면 종이에 써 가면서 고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그런 FM아이에게 내가 괜한 반성거리를 더 안겨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더욱 미안했다. 


"에이. 엄마도 반성할 게 있지.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 건 아니야. 우리 같이 하자." 


그렇게 우리매주 일요일 중국어 공부와 반성을 하기로 했다. 물론 반성을 때는 잘한 일도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아이들은 순수하고 맑아서 너무나 즐겁게 무방비 상태인 나의 허를 찌른다. 오늘은 반성이란 한 단어로 나를 반성하게 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너희의 위에 서지 말아야지. 조금 더 힘이 있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너희가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더 잘할게. 사실 엄마는 매일매일 반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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