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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유목민 Jun 20. 2018

'다름'을 긍정하라! #수글나잇

나는 남과 다르다, 고로 존재한다

‘조승연’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 전쯤이다. TV채널 돌리다 우연히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는데, 거기서 박학다식한 지식인이자 다독가로 출연한 그를 처음 봤다. 여러모로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에, 마르지 않는 샘물만큼이나 방대한 지식, 거기에 스스로가 잘난 척이 심한 사람임을 쿨하게 인정하는 뻔뻔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특별히 얄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솔직함과 당당함이 돋보이는 멋진 사람 같았다.


그렇게 그는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이후, TV나 포털에서 몇 번 그의 이름을 접한 적은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됐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할 때, 기존 TV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하는 공부를 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보게 된 프로그램이 하필 ‘비밀독서단’이었다. 36개월 만에 다시 조우한 프로그램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조승연을 향한 나의 감정이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그가 꼴 보기 싫었다. ‘튀는 언변과 행동’이 거슬렸고, ‘할 말 다하면서 따질 것은 따지는’ 그의 성품이 불편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는 점도 무례해 보였다.


그 때였다. 아마 모니터링을 시작한 지 3~4시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출연진들이 직접 뽑은 ‘인생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보기 전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조승연’작가의 잘난 체를 구경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자신이 시청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책의 제목은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였다. 솔직히 처음엔 당황했다.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그가, 괴상한 제목의 수준 높은 고서를 놓아두고, 어린이용 만화책을 고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해서였다.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초등학교 시절, 강원도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조승연은,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말투, 행동, 사고방식 같은 것들에, ‘보편적이지 않은’, 혹은 ‘튀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혼란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데, <먼 나라 이웃나라-프랑스 편>을 읽고 나서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에스프리’, 즉 ‘나는 남과 다르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정신이 프랑스 사회에선 보편적이었고, 그래서 ‘묻고, 따지고, 할 말 다 하는 조승연 자신의 성품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의 타고난 특성을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당당함. 그것은 사실, 내가 몇 년 전까지 그토록 지키고, 실천하고 싶었던 가치였다. 나는 본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남들과 다른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행동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다름’이 ‘그름’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나름의 원대한 꿈도 갖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조금은 특별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조금씩 변했고, 이제는 ‘독특함과 개성’을 정해진 기준과 원칙에 어긋나는 불편한 덕목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 남들과 다르지 않을까 항상 눈치가 보이고, 그래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치부라고 생각하면, 고칠 생각을 먼저 한다. 그것이 온전히 ‘나다움’을 상징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유일 무일한 생각, 기호, 습관, 행동방식임에도 말이다.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법 행복했었고, 사는 게 꽤나 재미있었던 ’나‘였는 데 말이다. 본래 조금 독특했고, 엉뚱한 구석이 있었던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고, 자르고, 지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현실의 삶이 팍팍하고 고단했던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현재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여러 의문과 궁금증이 복잡하게 머릿속에서 지렁이처럼 기어 다녔다.


반성과 사색의 시간 덕분이었을까? 화면 속 조승연씨가 더 이상 미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마조마한 마음은 여전하다. 불편함인지, 불안함인지, 아찔함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이 여전히 가슴 속에서 춤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간만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덕분에 앞으로의 삶에서 내게 약이 될 만한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벌써부터 ‘에스프리 정신’이 내 귀에 속삭이는 기분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일 리 없으니, 부끄러워하거나 공포에 떨지 말고 스스로를 긍정하라고. 애초에 우리들은 서로 다른 얼굴로 타인과 마주치고 헤어지며 살아가는 존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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