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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유목민 Jul 05. 2018

증명사진#수글나잇

생각이 많아질 땐, 맛있는 걸 먹는 게 짱이다!

난생 처음 취업용 증명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을 방문했다. 미루고 미뤄오던 사진 촬영이었다.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나는 마땅한 제출용 사진 한 장 없었다. 취준생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이 지금껏 뭐했냐는 주위의 핀잔 섞인 질문을 들은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다. 마땅히 둘러댈 답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냥’이었다. 살다보면, ‘그냥’ 이유 없이 하기 싫은 것들이 존재한다. 증명사진을 찍는 일이 내겐 그랬다. 그래서 입사지원서의 이미지 첨부 란엔, 언제나 음침한 배경과 무료한 표정이 돋보이는 어둠의 사진을 제출하곤 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나를 이끈 건 예감이었다. 이번에 사진을 못 찍으면, 앞으로 영영 찍을 일이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평소 예감이 들어맞은 적이 손에 꼽지만, 이번엔 감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도착한 사진관은 사람들로 붐볐다. 하반기 공채가 멀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런 건가 했다. 직원은 나를 옷장으로 데려갔다. 촬영 때 입을 셔츠와 재킷이 사이즈별로 걸려있었다. 그 중 대 충 맞는 걸 골라 몸에 걸친 후, 무난한 사선 무늬의 남색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남은 건 소파에 앉아 순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일 뿐. 사진기가 내뿜는 ‘찰칵’ 소리와 눈부신 플래시가 그날따라 정겨웠다.


차례가 돌아왔다. 그런데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헤어스타일. 친절하고 다정한 직원 분께선, 내게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스타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머리 손질을 권했다. 기업의 채용을 담당하는 높으신 분들께선, 답답한 이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신입사원의 능력’과, ‘이마를 드러냄의 정도’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지 납득되지 않았지만, 딱히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고, 나는 곧바로 순한 양처럼, “아! 그렇군요! 당장 해결 하겠습니다”라는 몇 마디를 던지며, 거울 앞으로 향했다. 헤어 왁스와 빗이 구비돼 있었다. 왁스를 손바닥에 고루 묻혀, 앞머리를 빗어 넘기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많아서인지, 도저히 머리가 넘어가지 않았다. 사실, 나의 손질이 조금 소극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마를 보이는 일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손질을 마치고 왔는데, 직원 분께서 어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 “이마를 조금 더 보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역시 티가 별로 안 났나?’라고 자문하며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앉았다. 이마가 숨을 쉬긴 곤란해 보였다. 이마도 답답하고, 촬영을 시작도 못하는 나도 답답해서, 이번엔 아주 제대로 머리를 빗어 넘겼다. 앞머리의 존재 자체를 얼굴에서 지워보기로 했다. 이마의 모공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도 한결 상쾌해졌다. 기대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았고, 직원의 승낙도 받았다. 남은 건 촬영뿐!


사진관에서 촬영을 할 때마다 느낀다. 어째서 평소 힘이 없어 죽을 것 같은 나의 상체는, 사진기 앞에만 서면 잔뜩 힘이 들어가는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몸에 힘을 빼라는 사진사의 주문을 따르기 위해, 헬스장에서 배운 거친 호흡법을, 사진기 앞에서 반복해야 할 정도였다. 들이마시고, 내뱉고, 또다시 반복.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역시 미소를 지으라는 사진사의 주문이다. 이번엔 몸이 아닌 안면 근육이 경직됐다. 있는 힘껏 웃음을 짓지만, 사진사는 도대체 왜 얼굴이 갈수록 무서워지냐며 놀라신다. 입만 웃지 말고, 눈도 함께 웃으라는 그녀의 조언에 나는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본다. 이번에 반응이 좋다. 안면 비대칭으로, 고개도 조금 옆으로 틀어달란다. 이제야 감을 잡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좋아요'라고 연신 외쳐대는 사진사의 말에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그렇게 몇 번의 번쩍이는 플래시에 몸을 맡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 골랐다. 얼굴 곳곳에 잡티가 묻어있는 것만 빼면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 나는 기술의 힘을 믿는 사람이기에, 나의 피부와 안면 윤곽이 날카롭고 하얗게 변할 것임을 확신했고, 조용히 사진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취업용 증명사진이 생애 최초로 나의 수중에 들어오게 됐다.


사진을 받고 사진관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말로 할 수 없는 안도감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 느낌은 뭐랄까, 직업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을 얻은 것 같은 기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자격’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왜 ‘단정한 양복 차림을 하고, 앞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넘겨 이마의 광채를 드러내며, 선량하면서 적당히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미소로 무장한 말끔한 얼굴 사진’이 그러한 자격의 유무를 가르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것인지. 더불어, 그러한 인식을 내면화한 채, 싱글벙글 사진관을 빠져나오는 나라는 인간의 정체는 무엇인지. 참으로 수수께끼 같았다. 


‘자격’을 증명하는데 ‘얼굴’이 무슨 역할을 하긴 할까? 가능할 것 같긴 하다. 인사담당관들이 전부 관상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데, 어째서 취업용 증명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의 미소와 표정은 전부 개성 없이 획일화된 모습인 걸까? 관상을 보려면, 오히려 지원자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진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취업용 증명사진’이라는 공장형 표준 규격을 없애버려도 될 텐데... 물론 그럴 경우, 전국의 수많은 사진관이 재정난에 허덕일 수도 있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나의 물음은 배가 고프다는 몸의 신호를 듣자마자 곧바로 중단됐다. 밥이나 먹어야겠다. 생각이 많을 땐 역시 맛있는 걸 먹는 게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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