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유목민 Jul 19. 2018

마비된 몸#수글나잇

느낌을 좇는 삶을 살고 싶다. 감각을 믿는 용기를 갖고 싶다.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코인 노래방 방문을 즐겼고, 반주에 나의 목소리를 얹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기타를 배웠다. 처음 기타를 잡았던 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의 스승은 같은 동아리 소속, 나 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정교하고 진지했다. 나도 절실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살면서 두 번째였다. 남의 말에 따르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누군가를 존경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것은. (첫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를 가르쳐주셨던 학교 선생님이셨다.) 


처음 배운 곡은 박기영의 ‘시작’이었다. G코드로 시작하여 D코드, Em코드를 쭉쭉 거쳐 최종적으로 다시 G코드로 회귀하는, 기타에 발을 내딛은 초보들이 연습하기에 딱 맞는 곡이었다. 6개의 코드를 차례대로 짚고 나면, 간신히 노래 한 소절을 부를 수 있었다. ‘시작’은 그렇게 나의 애창곡이 됐다. ‘오직 너만을 생각한 밤이 있었어.’라는 도입부 가사는 아마 내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코드를 짚는 손끝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기타가 없는 순간에도, 내 손은 허공에서 연주를 한다. 샤워를 하며 온몸에 비누칠을 할 때도, 화장실에서 울리는 내 노래의 첫 번째 트랙은 언제나 ‘시작’이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기를 멈춘 지 2년이 되어 간다. 이제 손끝의 감각은 희미해졌다. 기타를 품에 안고, ‘공기 반 소리 반’을 구현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집중시켰던 나만의 흥과 느낌도 낯설다. 기타와 노래가 나의 삶에서 멀어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였다. 관계의 생명력이 다한 커플이 헤어지듯,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별했다. 이유를 굳이 스스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속으로 ‘안녕 잘 가!’라고 외쳤을 뿐. 자취방 창고에는 여전히 먼지가 잔뜩 쌓인 기타 케이스 안에 감금당한 외로운 기타가 처박혀 있다. 더불어 쩌렁 쩌렁 울리던 나의 목소리와 소울도 함께 박제되어있다. 물론 나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한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최근의 일이다. 나는 후회한다. 그 때의 이별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기타와 목청을 가다듬던 나의 모습을. 나는 추억한다. 설렘과 애정을 담아 불렀던 ‘시작’의 첫 번째 소절을. 그래서 깨닫는다. 오직 너(기타와 노래들)만을 생각한 밤이 있었고, 그 모든 순간이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고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은 ‘몸’이 내게 알려준 진실. 머리가 내뱉는 거짓말로도 가릴 수 없는 소중한 느낌이다.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비극이다. 머리로 따지고 판단하는 삶 속에 갇혀있다는 것도 비극이다. ‘그래서 나의 삶도 비극이다.’라고 써보고 싶지만, 이것은 과잉된 감정이 스스로를 속이려는 거짓말 같으니, 자의식에 깊게 빠진 필자의 헛소리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삶의 딜레마가 펼쳐지는 갈등과 번뇌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공간도 항상 우리 내부가 아닌가 싶다. 정확히 말하면 ‘몸’과 ‘머리’의 싸움 같다. 나는 단언한다.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인간이 될수록, ‘머리’가 구현해내는 현란하고 기교 넘치는 생각과 변명 뒤에 숨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확언한다. ‘몸’이 전하는 느낌의 충만함과, 감각의 흥취를 무시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비겁한 잔머리의 속삼임에서 벗어나고자 힘을 내본다면, 후회하거나, 추억하는 삶을 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는 걸. (써놓고 보니 ‘셀프 디스’다.)


느낌을 좇는 삶을 살고 싶다. 감각을 믿는 용기를 갖고 싶다. 시작은 창고에서 기타를 꺼낸 뒤, 기타 줄을 조율하고, 박기영의 ‘시작’을 불러보라는 가슴의 명령을 따르는 게 첫걸음이리라. 헤어진 연인과의 이별이기에 조금은 어색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용기를 다짐해본다.


이번 글은, ‘썼다 지웠다’를 엄청나게 반복했다. ‘쓸 게 없는 데 어쩔 수 없지’라고 나 자신을 슬슬 꼬드기기도 했다. ‘좋은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욕심 때문에, ‘좋은 글’이란 무엇일지 수차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거짓말들.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느끼는 대로, 감각이 말하는 대로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벌써 7번째 문단이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있는 그대로 대변해주는 삶의 동반자, 그렇기에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이기도 한, 나의 마비된 몸에게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삼시세끼 잘 챙겨먹을게.



작가의 이전글 증명사진#수글나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