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화가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가 밉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
화도 나지 않고 밉지도 않고
딱히 슬프거나 속상하지도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상처받은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위로가 되는 책을 읽는다거나
도움이 될만한 강의들을 들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딱히 상처받지도 않아서
그런 활동들이 의미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화가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
남들 앞에서 쉽게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신기하다.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까.
좀처럼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 기타 등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부류는
남이 없는 자리에서 남 험담하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본인 인생이 재미없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 본인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하고
바쁘게 본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화가 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이유는
화를 내는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소모적인 행위에
나의 일부를 태워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는 일시적으로 감각을 차단시킨다.
화가 나는 상황은
불씨가 타오르는 시점이다.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불씨는 꺼버리면 그만이다.
굳이 더 태워낼 이유가 없다.
불씨를 더 키워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한 것 같다.
나의 불씨를 키우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소모적인 행위를 자처하지 않는다.
온전히 나는 나를 위해서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