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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금 Sep 13. 2024

쓸모없는 사람

끝없이 가라앉는 사람들

오늘도 역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 와서 날이 흐려서일까

또다시 가라앉는 기분을 느낀다. 


오늘 나는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을 갔다가 나는 조금 슬프다고 느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이 지긋하신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흰머리카락을 가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분이 오셨다. 

아마도 처음 방문하신 것 같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간호사와 할머니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뇌리에 박혀버린 말.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아."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기분을 공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20살 때부터 강하게 느껴본 적 있는 기분이기에. 


보통은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후 느끼는 기분.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 살아가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기분. 

그 기분을 나는 왜 

이제 막 성인이 된 순간부터 느꼈어야 했을까. 


보통 인생은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난 뒤에는 하강곡선을 그리는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일. 

평생을 걸쳐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일. 

그 과정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 

하나의 과정을 지나오는 일. 

그게 인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인 나는 사실 

상승곡선에 놓여 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구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실은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만 애초에 어떤 것도 

대단한 무언가도 이루거나 가져본 적 없는 내가 

스스로 하강곡선을 그려낸다는 건 

나의 영역을 제한시킨다는 건 

사실 상승곡선에 놓여있는 나의 인생 그래프에 

마이너스 요소인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나를 위해서 나는 상승곡선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나아가기를 스스로 제한시키고 있는 걸까. 


그래서 생각해 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어쩌면 나는 나의 마지막을 너무 일찍 경험하고 온 것 같다는 생각. 

내 생의 끝의 의미를 먼저 알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들이 

너무 쉽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강하게 느꼈던 시점부터 

어쩌면 너무 깊이 이미 하강곡선을 그려와서 

사실 상승곡선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 과정을 

이어왔다는 것. 


다시 마음을 바로잡기로 한다. 

0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마치 내 생에 어떤 사건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상승곡선을 그려나가기로 한다. 


나는 누구보다 가라앉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런 인생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상승곡선만 밟다가 어느 순간 추락하는 삶보다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삶. 


내 인생은 후자에 가깝고 

큰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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