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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금 Aug 31. 2024

도망갈 수 없는 사람

흘러가되 휩쓸리지 않게 살아간다는 건

광활하게 높고 파란 하늘이

요즘 들어 더 파랗게 느껴진다.

이제 가을이 오는 것 같다.

아니 이미 가을이 온 것만 같다.


가을이 되면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들은 벚꽃 피기 시작하는 봄에

설레고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데

나는 이상하게 가을이 되면

설렌다.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내 그림들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를

그린 작품들이 유독 많다.


이 계절이 지나면 또 한 해가 가겠지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거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겠지.

그렇게 흐르는 세월에 무뎌지며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산다는 게 어떤 날은 꽤 절망적이다.

남은 나날들을 살아가기에

나 자신은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말한다.

세월은 짧고 금방 흘러가버리니까

순간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의미 있게 보내라고.

라고 말을 해놓고

정작 본인 자신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를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

작품만이 남았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의미 없게 보내버렸다.

그렇게 그 시간들을 버렸다.

물론 아직 20대가 끝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시간이 좀 있는데

남은 날들을 자기 연민으로 가득 채워

또다시 흘려보낼까 봐 그게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다시

순간순간만을 살기로 했다.

정말 정신을 바로 잡지 않으면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나 자신이 없어질 것 같다.

아무것도 정말 남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의미부여를 하기로 했다.

매일매일을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처럼

살다 보면

후회되지 않을 나날들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순간은 정말 절망적이고

두렵고 외롭고 슬픈데

또 어떤 순간은 꽤 행복하고

즐겁고 평화롭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문득 지나가는 저 차에 치여 죽고 싶다 같은 생각 따위가

들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

그런 생각.


눈 감고 귀 막고

모든 감각들을 차단시키며

이 세상에서 도망간다고 한들

내 등을 떠밀고 있는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다.

원하지 않아도 성장해야만 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삶이니까.


그래서 너무

막막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쓰리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내일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나는 다시 내 안의 평화를

임시적으로 그려놓는 것이다.

마치 내면이 너무 평화로운 것처럼

나 자신이 착각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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