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한남동 어느 카페에서
어느덧 4월도 끝나간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는데
벚꽃을, 따스한 봄을 온전히 즐기기도 전에
여름이 오는 것 같다.
아니,
오늘은 4월 21일 월요일
영상 20도가 훌쩍 넘는 온도로
이미 초여름이 다가왔다.
나는 뉴욕에서 6일간 있으면서
봄을 보냈고,
벚꽃 시기를 보냈고,
서울에 와서는 봄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봄의 끝자락
지금이라도 즐겨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는 동생을 만났다.
이 동생을 알게 된 건 2019년.
나는 이 동생을 만나고 한 3년 정도 되던 해
어느 날 문득 우리가 꽤 오래 만나서
어쩌면 곧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관계들이 짧으면 6개월
길면 1-2년을 견디지 못하고
흐지부지해지면서 멀어진다.
아무 사이가 아니게 된다.
그건 서로가 사이가 안 좋아져서도 아니고,
누구 한 명이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스쳐 지나가며
멀어진다.
그런데 이 동생과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로 현재 2025년까지
약 7년을 만나는 것 보니
나에게는 흔하지 않은
어쩌면 굉장히 귀한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동생과는 결이 비슷하다.
취향도 좀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가고 싶은 전시회를 같이 가서
전시를 감상하면서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카페도 같이 가고
디저트도 같이 먹고
티코스도 같이 가고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지간히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다.
연락이 잘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짜증 나고 답답한 유형일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번호 전화는 받지 않고
가끔 아는 번호 전화도 안 받는다.
디엠이나 문자를 자주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가끔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너 살아있었구나?
하는 식이다.
얼마 전 뉴욕을 갔을 때
언니랑 브루클린에 위치한 한 카페를 갔었다.
그 카페에서는 원두들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그 원두들을 바라보는데
이 동생이 생각났다.
커피를 좋아하는 동생.
어쩌면 원두를 사다 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두 한 봉지를 샀다.
그러다가
어제 일요일
아주 오랜만에 한남동에서 이 동생을 만났을 때
만나자마자 선물이라며
원두를 건네줬을 때
동생은 매우 좋아했다.
매우 좋아하는 걸 보니
역시 사다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따듯한 동생은
나에게 정성스럽게 티백들이 담긴 선물을 건네주었다.
어떤 걸 바라고 원두를 준 게 아닌데
나를 생각하며 또 주섬주섬 내 선물을 챙겼을 것을 생각하니
매우 고마웠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비슷한 모먼트에 이끌려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
나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
그러면서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내게 심어주는 사람.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손가락으로 꼽아서 몇 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은 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몇 없는 친구들일지라도
굉장히 견고하게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다 예약제이다.
최소 2-3주 전에는 약속을 미리 잡아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나도 그러한 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인 게 나는 좋다.
서로가 각자의 일상을 잘 보내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더 극대화되고
만났을 때 더 많고 깊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
동생이랑 한남동 어느 디저트 카페에서
같이 예쁜 디저트를 먹는데
우리 맞은편에 남성 두 분이 앉아서
같은 디저트를 하나 시켜 나눠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뭔가 웃으면 안 되는데
덩치 큰 남성 두 분이서 앉아
작고 예쁜 디저트 하나 나눠먹으면서 하는 대화가 웃겼다.
"맨날 헬스장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햇빛 보니 좋다."
근데 그 말에 약간 공감했다.
나는 헬스장은 아니지만 보통 작업실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햇빛 보니 좋았다.
이날은 엄청 날이 좋았다.
햇빛도 따스하고
나는 원래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이날은 어쩐지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니고 싶은 날씨였다.
영상 온도,
따스한 햇빛,
오랜만에 만난 동생,
그리고
4월 봄.
모든 게 완벽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작업실에서 열심히 그림 그리고
전시 많이 하고
얼른 성공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겠다
였는데
사실 행복이란 건
그저 그런 듯한 일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행복한 날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어느덧 성공에 더 가까워져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