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중국인, 반에선 북한

by 윤다솔


친구들이 나를 보면 김정은, 히틀러라고 불렀던 시기가 있었다.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잠깐 보냈을 때였다.
언어가 서툴렀고, 반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내게 누군가는 호기심처럼, 누군가는 장난처럼 다가왔다.


처음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한국은 위험하지 않아.”
“김정은을 본 적은 없어.”


그런데 그 질문은 1년 내내, 사람만 바꿔가며 반복됐다.
하지 마. 몰라.
놀림은 반복해서 쌓였고, 참을성은 서서히 닳아갔다.


밖에선 “중국인”, 반에선 “북한”과 “나치”.
인종차별을 숨 쉬듯 들이마시다 보니, 나는 누가 툭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화가 가득 찬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날도, 똑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북한 얘기였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분노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날, 북한 질문을 던진 애가 하필 머리가 유난히 큰 아이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약점을 잡아 비난했다.


“입 닥쳐! 이 머리 큰 놈아.”


반 아이들은 잠깐 정적 후, 이내 깔깔거리며 뒤집어졌다. 내 말에 찔린 애는 당황한 표정으로 굳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듣기 싫다고! 북한 모르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분이 풀리지 않아 소리를 질렀다.


그 애와 몇몇은 알겠다 그만하겠다 말했지만, 다른 애들은 ‘머리 큰 놈’이라는 말을 되뇌며 웃었다.


그리고는 그 애를 놀리는 사전에 있는 단어 하나를 알려주며 따라 해 보라고 권유했다.


정확히 비속어는 아니었는데, 그 애를 가리키기엔 충분히 날카로운 말이었다.


처음엔 뜻도 모른 채 따라 했는데, 북한 얘기 대신 그 단어가 학기 내내 반에서 유행어처럼 번졌다.


불쾌했고, 불편했고, 씁쓸했다.


타깃이 나에서 그 애로 옮겨간 느낌에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공격을 해야 그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누군가를 괴롭힘의 타깃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느낌이 남아서, 나는 오히려 더 화가 났다.


나는 그 애에게 미묘한 죄책감을 가졌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 애도 나를 공격했고, 나도 그 애를 공격했으니—서로 주고받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찝찝함만 남긴 채 사과할 기회까지 놓쳤다.

밖에선 중국인, 반에선 북한. 농담처럼 붙은 말에 매번 해명했었다.


그때의 나는 한국이 그리운 만큼 예민했고, 예만 한 만큼 화가 나 있었다.
화가 아니면 버틸 수 없었다.


그때 이후로 딱 한 가지 하지 않겠다고 정했다.

내 분노가 누군가의 외모나 약점을 비는 칼이 되는 순간. 나는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되니까.

그래서 화가 날수록 내가 지킬 선을 더 단단하게 붙잡았다


작가의 이전글몸을 사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