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사리는 사람

by 윤다솔


나는 격한 운동을 싫어한다.
심박수가 순간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운동이 특히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체육시간에 50미터 뛰기 기록이라던가 피구 한다던가
순간 폭발적으로 심박수가 급하게 올라가는 운동 자체를 싫어했다.


그래서 뛰는 것 자체도 꺼려했고
열심히 뛰고 나면
폐에서 쇠맛이 나는 느낌도 싫어했다.


나는 내가 몸을 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싫어하는 나의 부분 중 하나였다.
뭐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뼛속 깊이 새겨진 느낌.


그래도 살면서 운동과 멀리 있을 순 없었다.
살면서 내 몸을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라는 걸 느꼈고


격한 운동은 너무 싫어 고민하다
필라테스란 운동이 체형교정도 되고
코어 근육을 단단하게 잡아준다길래
난생처음으로 강사분께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들지만 할만했다.
할 때는 다리에 지진이 난 것 마냥 덜덜 떨리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홈트보단 낫기도 했고
무엇보다 끝나면 기분 좋은 근육통이 있었다.
근육통이라는 게 이렇게 시원하게 올 수 있었구나
놀랐었다


내가 평생 고칠 수 없던 오다리도 교정이 됐고
구부정하게 있던 체형이 펴져 키도 2센티나 컸다.


허리도 매우 약해서 1만보를 걸으면 허리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디스크도 아니고 침으로도 해결할 수 없던걸
필라테스를 하며 점점 나아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3년을 했다.

강사님도 내가 체력이 많이 올라왔으니 이정돈 해도 될까 싶으셨는지 운동 강도를 올리셨다.
유산소로 격하게 워밍업 하고 하체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나도 하면서 죽을 것 같은데 또 강사님이 할 수 있다고 계속 북돋아주셔서 내가 오버페이스를 한지도 몰랐다.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며 소리가 아득해졌다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고 그 자리에 서있으면 꼭 쓰러질 것 같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온몸을 때리는데 그 바람 덕분에 헛구역질을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벽에 기댄 채 누가 보든 어쩌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어찌 신경 쓰랴


이 추운 길바닥에 냅다 눕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었는데
같이 수업 들은 사람이 내 혈색을 보고 놀랐다.

내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청색증을 떠올릴 만큼.


한 10분간 상가 벽에 기대고 숨을 몰아쉬니 입술 혈색이 돌아오고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돼서 집에 기어가듯 겨우 도착했다.


좀 자고 일어나니 살짝 회복했는데


내 몸이 이렇게 약하다니.
충격적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필라테스하면서도 비슷한 순간이 한 번 있었다.


그때도 유산소 후 하체 운동을 할 때였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멈추고 쉬었다가
입술이 살짝 하얗게 질렸던 걸 보고 놀랐었다


또 한 번은 연말에 회사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산에 다 같이 가자 하여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끌려갔다


올라간 지 10분 만에 숨이 턱끝까지 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았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어
산행 초입에 드러누웠다.


다들 나를 걱정하며 출발을 미루는 모습에
먼저 가라 괜찮다 말하곤
집에 돌아와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자괴감에 시달렸다.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격한 운동을 싫어하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순간 죽겠다 싶을 때까지 하는 게
운동이 맞나 생각이 들었다


다들 그런데 나만 느끼는 건가
내가 너무 나약한가
고민이 들어 지피티에게 물어봤다.


지피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정확한 건 병원에서 확인해야 해요. 원인은 여러 갈래일 수 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안심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려서.


머리를 탁 쳤다
나는 가족력이 있었다
어머니는 저혈압이었고
아버지는 고혈압 고지혈증.
나는 그 사이 어딘가 서 있는 몸이었다.


이 말을 또 지피티에게 하니
“엔진은 예민하고, 배선은 가족 내력상 불안 요소가 있을 수 있는 상태”라고 대답했다
고강도 운동을 하면 정말 까다로운 몸이라고


물론 격하게 운동을 하며 나처럼 어지럼증 구토 유발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많다고 했지만
가능성이 여러 갈래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의지’로 버틸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을 한 번 제대로 확인해봐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모든 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왜 지금까지 고강도 운동을 유독 꺼려왔는지
의지 부족이 아니었구나를 깊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몸을 사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예전처럼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게을러서 고강도 운동을 꺼리는 게 아니다.
당당하게 생각하게 됐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참고 버티는 게
꼭 성실함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몸의 한계를 조금 일찍 알아차리고 멈출 줄 아는 것도
나한텐 필요한 능력 같았다.


이제 운동을 할 때는
“죽을 것 같으면 거기까지”라는 작은 규칙 하나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끝까지 버티는 쪽을 성실함이라 믿었다.

요즘의 나는 멈출 줄 아는 쪽을 더 믿는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