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져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나기까지

by 윤다솔





난 어렸을 때부터 바닥을 좋아했다.

바닥에 누워 하루 종일 보내는 건 기본이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냐면,

엄마가 바닥에 누워있는 나에게 밥을 먹여줄 지경이었다.

물론 크면서 ‘일어나서 먹어!’라고 혼난 뒤로는

앉아서 먹기 시작하긴 했다.


그만큼 나는 누워있는 데 특화된 DNA를 갖고 있었다.

등만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눕고,

침대랑 한 몸인 것처럼 밖으로 잘 나오지 않게 됐다.


무기력증이 오고 난 뒤에는 그게 더 심해졌다.

바닥은 쉬는 곳이 아니라 숨는 곳이 되었다.

침대 속에 파묻히면 더 나올 수 없었다.


왜 무기력증이 왔을까 계속 생각했다.

쳇바퀴 같은 일상 때문인가?

주도권 없이 끌려가는 인생 때문인가?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무기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나를 조금씩 잠식했다는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생각하다가도

그 생각조차 힘들어지는 날이면

핸드폰 게임으로 시간을 갈아 넣었다.


일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 앞에서 멍을 때리고,

모니터를 보다 보면

눈이 따가워서인지, 마음 때문 인지

가끔 이유 모를 눈물이 뚝 떨어졌다.

피곤해서인지 마음 때문인지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 느낌이었다.


이 우울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 계속 떠올랐다.


여전히 답은 없었고,

나는 끝없는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몸은 물먹은 담요처럼 무거웠고

움직이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하루는 샤워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12시에 들어갔는데, 새벽 4시에 나온 적도 많았다.


웃긴 건, 그렇게 4시간을 앉아 있다가도

일어나는 이유가 ‘샤워해야지’가 아니라

“폰 배터리 충전해야 하는데…”

이 생각 때문이었다.

답도 없는 스마트폰 중독자였다.


친구에게 답장하는 것조차 버거웠고

SNS는 더 보기 싫었다.

들어가면 남들과 비교하며 더 비참해질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살면서 또 침대에 파묻혀 폰만 보는 내 인생이

스스로 질릴 지경이었다


인생이 지겨웠고,

자기혐오는 극에 달했다.

‘이러다 진짜 죽겠다’ 싶던 어느 때.


그때 나를 끌어올린 게 강아지였다.

내가 깊은 생각의 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

타닥타닥 작은 발소리에 고개를 들면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 눈을 보면

움직이기 힘든 몸도 이상하게 스르륵 일어났다.

산책을 아주 잠깐이라도 나가면

머릿속의 끝없는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이 끊어졌다.


밖에 나가 서 있기만 해도

큰 기분 전환이 됐다.


하루 종일 우울하다가도

강아지 얼굴 보면 힘이 났다.

나를 보며 행복하게 웃는 얼굴 덕분에 오늘의 하늘, 오늘의 공기,

오늘의 풍경을 보고 걸을 수 있게 됐다.

몸의 물기가 조금씩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나는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다시 무기력에 빠지면 또 침대에 파묻히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과 조금 다르다.


예전 같으면

“또 누워있지. 난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한심할까?”

이렇게 나를 몰아세웠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또 눕네. 뭐… 피곤했겠지.

괜찮아. 회복하는 중이야. “


완전히 나아진 것도 아니고

무기력이 왜 왔는지도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보다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다시 하루를 산다.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예전의 나보단

나를 덜 미워하며 사는 중이다.


아마 무기력은 한 번에 끝나는 감정이 아니라

조금 나아졌다가,

조금 주저앉았다가,

그걸 반복하며 지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