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지 못하는 어른

by 윤다솔

오늘도 아빠한테 한 소리 들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동생 말이 잘 안 들려서 발음 좀 똑바로 해달라 말하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잘 안 들린다며 더 분명하게 해달라고.

그러다 언니가 옛날 생각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너도 옛날에 발음이 하나도 안 들렸었는데. 내가 맨날 지적했잖아.”

“맞아. 나 그거 듣기 싫어서 고치려고 노력했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바로 고치라 말하는 게 습관화된 우리 집에선

그 지적을 듣기 싫으면 먼저 고치는 게 그 잔소리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때 바로 아빠가 나에게 지적이 들어왔다.


“너는 말을 빨리 하는 게 문제야. 빨리 말하니까 들리지도 않고 뭔 소린지도 모르겠잖아.”


발음 이야기를 하다 엉뚱한 소리에 나는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아빠의 얼굴을 보니 그냥, 나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부족한 내 결점들을 고치라는 듯이.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였다.

뜬금없이 내 말투, 내 웃음소리, 내 습관 등등.

내 모든 사소한 부분을 꼬치꼬치 흠을 잡는다.


나는 기분이 나빠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반박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아빠한테 누가 버릇없이 대꾸해.”


대답하면 돌아오는 말이었다.


아빠는 현장 일을 오랜 시간 했었다.

그곳에서 말이 세게 오가는 게 익숙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집까지 따라온다는 거다.

기분이 나쁘면, 듣기 싫으면, 윽박으로 끝을 내버리는 사람이라는 것.


게다가 요즘은 밥도 잘 못 드셔 예민해졌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장땡인 게 싫다 토로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쩌라고”라며 화를 낸다.

아빠는 고칠 생각이 없는 거다.


나는 그 윽박 속에서 대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랐고

점점 아빠 앞에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아빠와 눈을 마주치는 일을 줄이게 됐다.


지적이 들어올 때마다 대답도 못 하고 기분 나빠하는 표정으로 있으면

“네가 내 딸이니까 하는 이야기지. 남들이면 하겠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좀 고쳐.”

라는 말이 항상 따라붙었다.


가족은 멀어질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선을 넘는다.

가족이라서 선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게 된다.

가족끼리도 상처받고 화나는데 왜 그렇게 까내릴까.

남들한테 욕보이는 게 그렇게 무섭나?

가족한테 미움받는 게 더 싫지 않나?

적당한 선 없이 너무 마음속 깊은 부분을 갈기갈기 할퀴는 아빠의 언행이 괴로웠다.


사실 아빠의 언행보다 아빠에게 반박하나 못 하는 어른이라는 게 더 무력감이 크다.

나는 말이 많아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사람인데

아빠에게 사소한 지적들이 들어올 때면 분노와 동시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때마다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니 속에서 곪아가는 느낌이 든다.


아빠는 소리 지르면 끝나지만, 나는 그 말들을 계속 곱씹는다.

내가 말했어야 하는 말들을 생각하고, 생각하다 결국 일기로만 남긴다.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니.


여기서 더 막막한 건, 내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는 것.

능력이 없으니 아빠 집에 빌붙어 사는 건 맞으니까.


“그게 싫으면 나가.”


그걸 들으면서 어. 나가. 나가줄게.

이를 아득바득 갈며 생각하다가도 막상 나갈 수가 없어 허탈해진다.

속으로 화를 품은 채 일기만 조용히 쓰게 된다.


아빠는 왜 유독 나한테 지적을 할까 생각을 했지만

아빠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다.

형제들 중에서 나는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

아빠는 내 안에서 자기 싫은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보는 것 같다.

그게 느껴질 때면 더 복잡해진다.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거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닌데.

같이 대화를 할 수는 없는 걸까?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일을 그만할 수 없는 걸까?

평생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아 더 무력한 기분이 든다.


아빠는 내 말을 무조건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든다.

내가 느끼기엔 부정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다.


이해는 하지만 그게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속에서 화가 터지기 전에 조용히 쓰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