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동기의 말로
일전에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엄마마다 모성애의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 엄마도 인간이라는 것,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 그게 드라마에서 느낀 주제의식이었다.
특히나 이제 막 출산한 딸의 거친 입술을 닦아주며 '순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순산이 어디 있어. 내 새끼는 죽다 살아났구만'이라 하던 엄마의 말은 아직도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명장면이다.
그 외에도 산모들끼리 아이를 가장 잘 보는 상위 엄마와 하위 엄마로 급을 나누었던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드라마이기에 더 극적으로 주인공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설정한 부분이라는 것은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이후에야 알 수 있었지만.
필자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을 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산모들끼리의 만남도 거의 없었던 터라 드라마에서처럼 산모들끼리의 신경전이나 알력싸움 같은 것은 없었다. 한편으로 조동모임(조리원 동기 모임)으로 만날 친구들을 바라고 있던 필자로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필자와 같은 마음이었던 한 엄마가 먼저 용기를 내어 A4 용지에 '모임'을 주최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모두가 볼 수 있게 공지해 두었다. 그 덕에 거기에 적힌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필자에게도 조동(조리원 동기)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조리원 안에서 모임 회원들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미 퇴소한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 조리원에 있다 하더라도 팬데믹으로 인해 밥도 각자 방에 들어가서 따로 먹어야 하는 판국이었기에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모임 회원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퇴소를 해야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조리원 동기는 조리원 안에서보다 조리원 밖에서 더 유용했다. 함께 육아를 하며 시기별로 어떤 것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한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공동구매 등을 통해 더 저렴하게 육아 물품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육아는 긴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소아과에서는 웬만하면 100일 동안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아이와 단 둘이 집에만 있다 보면 맛없는 쑥만 먹다 결국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간 호랑이의 심정을 백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100일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래도 조리원 동기가 있으면 그 시간이 그나마 견딜만하다. 비록 채팅일 뿐이지만 '아 이 고통을 나 혼자 겪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전우애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웅녀가 된 우리는 집이라는 동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한 프라이빗한 룸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느낀 해방감이란. 아직도 그날의 커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딱 265일쯤 더 흘러 아이가 돌이 되는 때, 조동모임은 해체된다. 둘째 때도 비슷했다. 육아휴직 기간이 보통 1년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엄마들은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서로 만날 시간도 없고, 가끔가다 채팅으로만 생존신호를 알릴 뿐이다. 그게 산후조리원 조동모임의 말로이다. 물론 마음이 맞는 엄마들끼리는 따로 계속 만나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를 가늠해 보자면 '아이', '조리원' 외에는 딱히 엄마들끼리의 접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 맞는 접점을 찾는 분들이 이후의 연을 이어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개의 인연이 그렇듯 자연스레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막한 1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위로해 주는 것만으로 육아에 큰 도움이 되니 기회가 된다면 조동모임을 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 오늘의 육아에서 살아남으시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