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면 기쁨 다음으로 몰려오는 생각이 있다.
'아. 어떡하지.'
처음 겪는 출산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출산이 얼마나 아픈지를 모르니 선배들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누구는 콧구멍으로 수박이 나오는 기분이라고 그러고, 누구는 탱크가 내 배를 밟고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온 적도 없고, 탱크가 내 배를 밟고 지나간 적도 없기에 여전히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떡하지. 제왕절개는 안 아프려나? 그래도 아이한테는 자연분만이 좋다는데. 학생시절, 자연분만을 할 때 아이가 산모의 질에 있던 다량의 유익균을 입으로 삼키거나 피부로 흡수하게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아, 너무 무섭다. 그런 막연한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채로 결전의 날은 점점 다가온다.
그러면 또 결정해야 한다.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양수가 터지기를 기다릴 것인지 유도분만을 할 것인지. 우리는 유도분만을 하기로 하고 날짜에 맞춰 남편이 휴가를 써 두었다.
그러나 유도분만이든 자연분만이든 산모의 선택사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의 머리가 10cm 이상이라거나 산모의 골반이 작다거나 고혈압이 있거나 다태아거나 하는 등의 사유가 있다면 제왕절개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런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아이의 출산 예정일에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 두었다.
그리고 분만 당일, 전날부터 금식하고 아침 일찍 분만실에 도착했다. 태아의 심음을 재기 위한 기기들이 나의 배 위에 달라붙었고, 분만을 유도하는 주삿바늘이 내 팔에 꽂혔다.
그렇게 12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자궁은 열리지 않았다. 진통제를 함께 맞고 있던 것인지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몸은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아이 심장 박동이 낮아지고 있어요! 수술해야 합니다. 아버님은 수술 동의서 작성하시고 지금 수술 들어갈게요!"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장박동이 낮아졌다는 건... 두려움과 걱정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저녁 9시 55분에 나의 첫째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눈을 뜬 나는 작고 귀여운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첫 느낌은 귀여운데 얼떨떨하다였다. 이 생명체가 내 아들이라고? 아직은 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통. 배 위를 모래주머니가 누르고 있었고, 배에 남은 양수 찌꺼기들을 빼기 위해 간호사들이 나의 배를 아주 세차게 눌렀다. 자연분만을 하면 필요 없을 과정이라고도 했다. 제왕절개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배를 찌르는 고통에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회복을 위해 걸으라고 한다. 하지만 걸을 수가 없다. 움직일 수도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배에 칼 맞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영화에서 보면 그러고도 쌩쌩하게 잘만 돌아다니던데... 순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으로 도저히 그렇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 어찌 되었든 아플 건 다 아파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무통주사가 잘만 먹으면 자연분만은 아프지 않게 아이를 낳는 산모도 많다고 한다.
만일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면 양수 터지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부디 의사의 진단 없이 유도분만을 부러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지했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냥 양수 터지기를 기다리고 싶다.
둘째는 첫째가 제왕이었기에 선택사항이 없었다. 그냥 무조건 제왕을 해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일이 3주가 남았는데 양수가 터져버렸다. 이때도 어떡하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새벽 2시쯤이었던 것 같다. 자다 말고 무언가 다리 사이로 뜨끈하게 흐르는 기분이 들어 일어나 보니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수술을 했기에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데 이대로 나와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급하게 대강 씻고 옷을 차려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 물었다. 밤 11시쯤 야채를 먹었다고 하니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음식을 먹은 상태에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야 수술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두렵고 막연한 기분은 둘째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침 7시 32분이 되어서야 둘째가 태어났다.
그래도 다행히 이때는 수술을 생각하고 들어간 터라 페인버스터를 꼭 시술해 달라고 했기에 첫째 때만큼 수술 후에 고통이 극심하지는 않았다. (페인버스터는 무통주사 외에 따로 마취를 한 번 더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할 수 있다는 페인버스터에 대한 부작용 고지를 들었음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진짜 첫째 때처럼 다시 아프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다행히도 부작용은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조금 답답했을 뿐 긴 생리통을 앓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만일 제왕절개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필자만큼 겁이 많은 분이라면 페인버스터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제왕절개든 자연분만이든 산모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고통의 크기를 감안하더라도 할 수 있으면 자연분만이 나을 것 같다는 것 정도가 필자의 의견이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 오늘의 육아에서 살아남으시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