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든, 둘째든 아이를 가져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면
셋째를 갖고 싶다.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생각인 것도 같다. 다들 하나도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판국에. 셋째를 고민하다니. 그러나 그 생각은 배가 불러서도, 어떤 사명감을 가져서도, 딸을 갖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아이가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상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있지도 않은 아이가 나를 기다린다니.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아이가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가 않다. 돈도, 마음도, 체력도. 모든 게 빠듯하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케어하면서 한 아이를 더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제야 조금 편해졌는데 또 밤을 새워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고지혈증 약을 먹지 않고도 내 몸이 버텨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세 아이를 감당할 만큼의 자본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AI에게 물어보았다.
35세 여성의 셋째 출산을 고령임신으로 분류되며, 임신성 당뇨, 조산, 기형아 위험이 2-4배 증가한다. 남편도 고령이며 셋째를 갖는다면 현재 아이들과도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아 육아 피로 누적이 재임신, 출산 합병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뼈를 때린다. 그리고 재정문제와 부부의 화목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원하는 게 아니라면 출산하지 않거나 미루는 것을 추천했다.
현실적인 조언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출산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AI가 내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생각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가정 형편이 안정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사는 문제는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그런 꽃밭 가득한 생각으로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낳았다.
하지만 부모가 된 지금은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제까지고 꽃밭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언제 이사를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취직을 위해 새롭게 공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 그저 프리랜서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나의 벌이로는 셋째는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루겠다는 의사이지, 그래서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아니다. 그래도 마흔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어느 정도 기반을 조금 잡고 난 뒤에 아이들도 조금 더 크고 난 뒤에. 그때쯤엔 조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나는 어쩔 수 없는 꽃밭인 걸까...?
뭐, 그렇다고 나중에 가서 아이가 막 들어선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이 갖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테니까. 모든 여력이 허락한다면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막내를 꼭 만나고 싶다.
굳이 그렇게까지 셋째를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기는 사랑스러우니까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다다. 아기를 보면 매일 웃게 된다. 그것보다 우는 날이 더 많은 것은 비밀이지만. 어쨌든 웃기는 하지 않는가. 무채색으로 하루를 보내느니 보다 빨갛든, 노랗든 그런 감정의 날개를 달고 춤을 추는 하루가 더 풍성하지 않은가. 바람 잘날 없는 가지 많은 나무가 되고 싶다.
언젠가 자식들을 모두 키워낸 엄마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땐 뭐가 그렇게 여행이 가고 싶고, 영화가 보고 싶고, 잠도 많이 자고 싶고,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너희는 자랄 테고, 그러면 이렇게 실컷 하고도 시간이 남아 돌 것을. 그때에 너의 눈을 더 봐줄 것을. 그때에 너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줄 것을."
맞다. 지금은 영화도 보고 싶고, 여행도 너무 가고 싶다. 잠도 너무 자고 싶다. 그런데 저 글을 보고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그래,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육아를 하며 아니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며 그런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 '오늘이 이 사람과의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 그건 이곳에서 내가 없어져서 일수도 상대가 없어져서 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힘들더라도 조금은 더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물론 나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곧 내가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출산 문제에 대한 답이 보다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의 아이를 한 명 더 안아보는 것이 소원일지, 아니면 현재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나의 바람일지. 여러분의 결론이 궁금하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 오늘의 육아에서 살아남으시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