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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Jun 04. 2019

고정관념의 고정관념

영화 그린 북 중에서


고정관념 깨기


영화의 주인공인 돈 셜리는 어린 나이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10대에 이미 음악가로 공식 데뷔를 했다. 그리고 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천재였다.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그는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살고 있는 흑인이다.


돈 셜리는 고정관념을 깨는 자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흑인이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이 시대는 유독 흑인들에게 가혹했다. 흑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율과 사회 통념을 마치 신앙처럼 떠받들던 때였다. 누구나 따라야만 했다. 숙소나 화장실을 따로 써야 할 만큼 흑인에 대한 차별이 팽배한 시대였다.


더구나 클래식 음악은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클래식 음악, 그것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온 흑인이었던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또 하나의 예는 미국 남부로의 연주 여행이었다. 그는 카네기홀 위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충분한 재산 뿐만 아니라 안락한 삶도 보장받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흑인들에게 여행이란, 특히 미국 남부 여행은 너무나 위험했다. 흑인의 안전한 여행을 위한 가이드 북(그린 북)이 발행될 정도였다.


결국 이 계획은 온갖 차별과 수모뿐만 아니라 신변의 안전까지 고려되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호원까지 구해가면서 남부를 택한 이유는 그곳이 흑인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했기 때문이었다.



관념을 깨기 위한 또 다른 고정관념


물론 그가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과 싸운 것은 아니다. 그는 클래식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흑인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당시 사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 통념과 일정 부분 타협을 한다. 자신의 꿈이었던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포기한다.


또한 그는 철저히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의 생활방식을 따라간다. 그의 삶은 동시대 흑인들의 생활상과는 거리가 멀다. 피부색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상류층 백인이다.


영화에서 남부 여행중 차가 고장나는 장면이 있다. 백인인 토니는 자동차의 본넷을 열고 열심히 수리한다. 이 때 근처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던 흑인들이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들 눈에 백인은 열심히 수리를 하고 흑인은 자동차 뒷자석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더구나 백인은 흑인을 위해 자동차 문도 열어준다! 그들은 모두 일손을 놓고 마치 외계인 보듯 셜리를 바라본다. 흑인들에게 있어 그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결국 주인공 셜리는 편견을 부수기 위해서 또 다른 편견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전형적인 백인들의 상류 문화를 따르는 것이었다.


남부 연주 여행에서 이러한 상황이 잘 드러난다. 흑인을 향한 사회의 통념을 바꾸기 위해 셜리는 백인들을 위한 연주회에서 백인처럼 연주하며 그들의 찬사를 받고자 노력했다. 마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또 다른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 수리장면도 마찬가지다. 아마 피부색만 서로 바뀌었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셜리의 행동은 철저히 상류사회 백인과 같았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적 상황은 그에게 끊임없는 갈등과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매일 밤 습관적인 술을 통해 자신을 달래며 외로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경호원으로 고용된 백인 토니로 인해 셜리의 내부 갈등은 서서히 절정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토니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토니와 셜리를 둘러싼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즉, 백인인 토니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내부 갈등이 더욱 더 부각된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를 가진 사람도 흑인은 양복점에서 양복 조차 입어볼 수 없었다. 양복을 입기 위해서는 토니 처럼 단지 백인이기만 하면 된다.


급기야 마지막 연주회를 앞두고 셜리의 내부 갈등은 폭발하고 만다. 자신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에게도 그리고 남자로서도 완전한 이방인이라며 절규한다.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기


셜리는 여행의 마지막 연주회에서도 끝까지 차별과 수모를 당한다. 자신의 연주회가 예정된 식당에 연주를 위해 들어갈 수는 있어도 식사는 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까지 흑인이 식사를 한 적이 없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백인을 위한 마지막 연주회를 거부한다. 그리고 우연히 흑인 클럽에서 흑인들과 함께 즉흥 연주를 하게 된다. 늘 고집하던 스타인웨이(피아노)가 아닌, 위스키 잔이 올려진 평범한 피아노에서의 연주였다. 마치 클래식 연주가를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흑인 재즈를 따르는 것도 아닌, 돈 셜리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가 즉흥 연주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화장실조차 함께 쓰기를 거부하면서도 그의 연주에는 환호하는 이중적인 백인들을 향한 웃음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찾은 것 같았다. 결국 셜리는 자기 스스로 만든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깨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토니 역시 셜리와의 만남을 통해 고정된 통념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는 흑인들이 마셨던 유리잔을 쓰레기 통에 버릴 정도로 편견 덩어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못마땅하다. 나아가 가족 파티에 셜리를 기꺼이 초대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셜리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끝부분, 갑작스럽게 방문한 흑인 셜리를 따뜻하게 맞이 하는 토니의 모습에 가족들 모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이내 자리를 내주며 함께 환영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토니 본인의 작은 변화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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