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단편 소설의 단상
말하자면 조금씩 반찬이 달라질 뿐 본질적으로 같은 식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식 A세트는 그의 일상과 꼭 닮은 식사였다. 규칙적인 기상 시간, 남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비슷한 차림의 복장,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출근 열차, 언제나 일정한 복사실의 영업시간이 그의 생활과 꼭 닮은 것처럼.
둥글게 모여 선 사람들 틈을 빠져나오는 그가 보였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다가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시계를 들여다보고 뭘 타고 가야 할지 생각했으며 잠깐 생각을 정리하려고 구겨진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신문에는 숫자로 보는 하루 생활이라는 제목 아래 각종 통계가 실려 있었다. 그가 사는 도시에서는 하루에 평균 274명이 태어나고 106명이 죽는다고 했다. 106명 중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죽은 것은 처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홀로 앉아 있는 그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그는 몇 마디인가 하고 불쑥 일어났고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사내가 선로 아래로 사라진 직후 사람들이 우왕좌왕 모여드는 틈에 그가 허리를 구부렸다가 펴는 게 보였다. 화면상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 사내가 뛰어내렸고 그는 그저 자기 발밑으로 굴러온 사내의 신문을 주웠다....”이때 구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경찰이 안타깝다는 듯 화면을 툭툭 쳤다. 이미 여러 차례 그 화면을 본 듯,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열차가 사내가 뛰어내린 자리를 통과했다.
“저는 그 사람이 떨어뜨린 신문을 주웠습니다.” “신문이요?” 경찰이 CCTV를 끄며 말했다. 화면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그런 건 그냥 버리세요.”
사고가 수습된 후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누군가 깔려 죽은 레일을 지나 직장으로 갔을 것이다. 사업상의 약속 장소나 사업체 면접 장소 같은 곳으로도.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토라진 사람에게 용서를 빌러 가는 길에도 레일을 지났을 것이다....누군가의 숨이 허망하게 끊어졌고 몸이 잘게 바스러져 한낱 얼룩으로 스몄고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남은 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타인과의 완벽한 친밀감이란 동경에 불과하며 인간이란 타인과 최소한 2미터 이상의 거리를 가져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몰랐다...그 거리는 복사실을 찾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놓인 카운터의 가로 길이와도 같았다. 누구도 카운터 너머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나 같다는 것. 그 때문에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언제나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거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