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을 펴서 ㅇ을 만들면
아침에 눈을 뜨면 화초부터 살피는데 화분 밑에 장식으로 놓여있는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 만져보니 단단하지만 부드러웠다. 그리고 오래 손품에서 따뜻해져 갔다.
돌은 둥글다. 돌의 형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돌이 가진 힘처럼 그것은 무한하다. 돌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자연의 작품이다.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데 어떤 인위적인 수단도 사용되지 않았다. 겉에서 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내부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집처럼 단단하다. <곰에게 쫓겨(마토 쿠와피)_산티 양크논 수 족> _ p202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 숲, 시애틀추장 외/류시화 엮음
돌이란 글자에서 받침 ㄹ을 펴서 이으면 ㅇ이 된다. 돌의 시간도 이와 유사하다. 뾰쪽한 돌이 바람과 물과 햇빛과 더불어 살다 보면 어느새 동그란 부드러운 곡선을 갖게 된다. 돌을 가만 쥐어 보면 어느새 내 온기가 돌에게 전해져 돌도 따뜻해진다. 돌들은 추운 방을 따뜻하게 온기를 전한 착한 품성을 지녔다. 그리고 작은 벌레들을 지키는 집이 되기도 한다.
ㄹ를 펴서 ㅇ이 되는 문장이 시가 되어 걸어 나왔다. ㅇ은 능력자다 굴러서 지구를 거뜬히 돌고 왔으니 말이다. ㄹ을 포함한 ㄷ ㅁ ㅎ 은 모두 따라쟁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ㅇ을 흉내 내는 게 안쓰럽다. 이런 모습들이 아이들에게 있는 게 더 슬픈 현실이다. 모두 똑같이 지구를 돌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아이들.... 하지만 ㅅ이 등장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ㅅ은 자기의 장점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걸어가겠다는 선언을 한다. 한마디로 작은 영웅의 길 떠남이다.
ㅇ이 자기는 어디든 굴러다닌다는 거야
지구도 한 바퀴 돌고 왔다며 자랑이 대단했어
ㄷ은 입을 크게 벌려 바람을 넣어 다물고
ㄹ도 몸을 펴서 둥글게 말았어
ㅁ은 친구들한테 부탁해 앞구르기 뒤구르기
ㅎ은 모자를 벗고 나타났어
ㅅ은 씩씩거리며 집에 가다가
휙 돌아서서
ㅇ, 너 말이야
바람 불어도 꼼짝 않고 서 있을 수 있어
난 걸어서 가볼래
까짓것 지구 한 바퀴
변은경, 『어린이와 문학』, 2022년 여름호
ㅅ처럼 ㄹ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여행을 떠나서 다행이다. 따라쟁이가 아닌 자신이 되고 싶은 골목길이 돼서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돼본 ㄹ이 나중에 연필이 되어 멋진 시하나쯤 끄적일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돼 볼래
몸을 쭈우욱 펴서 연필도 되고 싶지만
진짜 되고 싶은 건 길이야
날 닮은 골목길부터 돼 볼 참이야
누굴 만날지 벌써부터 두근두근해
변은경, 『어린이와 문학』, 2022년 여름호
<열림원 어린이>에서 해마다 우리나라 좋은 동시를 엮는다. 좋은 동시로 <ㄹ>이 실리게 되었다. <ㄹ>이 나간 세상이 다정해서, 그 길을 걷는 <ㄹ>도 다정해져서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다시 돌멩이를 쥐어 본다 .
돌멩이가 내 손안에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