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떠난 고양이 살구처럼
신재섭
접시에 얌전히 올라간 동글한 살구
동생이 살구에게 책을 읽어 준다
책 거꾸로 들고서
떠듬떠듬 이야기한다
살구는 졸지 않고 가만가만 듣는다
얼마 전에 떠난 고양이 살구처럼
귀 기울여 듣는다
접시에 올라간 동글한 살구
살구가 동생 이야기에 빠졌다
『왕집중 왕』초록달팽이, 2025
동생이 살구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이 와서 참 좋다.
이름처럼 예뻤을 고양이 살구가 떠나고
한참 시간이 지났을까?
살구가 떠나기 전에도
살구에게 책을 읽어 주었을 거다.
아마도 살구는 동생 무릎에 앉아
가만히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듣다가
호동그란 눈이 감기면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의 시간이 평화의 시간으로 옮겨온 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아이 자신의 힘이란 걸 믿는다.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형)도 부재의 시간을 넘어온 듯 하여
안심이다.
접시에 앉은 동그란 살구가
졸지 않으니 이야기가 꽤나 길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