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5년 12월 5일

금요일



오늘은 조금 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돌이켜 떠올려보면 몇몇 부분에서 저는 제법 이상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화되기 전의 어린아이라면 대개 그런 구석이 있으려나요.

저는 제법 늦된 아이였습니다. 육체적인 성장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요. 그런 주제에 내심 스스로는 특별하다 생각하는 망상에 빠져 있었지요. 그것조차 미성숙한 아이의 특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내심 즐겼던 것 같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꼭 뛰어나거나 잘나야만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면 모두가 100점을 맞고 혼자 빵점을 맞아도 좋아했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주목받거나 나대는 걸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주제에 또 나설 용기는 없어서 누가 멍석을 깔아줘야 겨우겨우 나대는 수동적인 어릿광대였지요.

대체로 혼자만의 망상 속에 살았던 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고집도 상당한 편이었습니다. 누나의 경우에는 우선 땡깡을 부려보고 먹히면 좋고 아니면 말고 느낌으로 가볍게 찔러보는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대체로 지레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마음이 먼저 꺾였달까. 안될 거 같으면 찔러보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 해야 할까,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아마 유순한 아이로 보였던 것 같네요.

실제로는 한번 뭔가 수틀리면 절대 꺾이지 않는 쇠심줄 같은 고집을 보유한 아이였지만요. 저는 소띠인데 그야말로 묵묵히 일하다가 남들은 모를 뭔가에 꽂히면 절대 꿈쩍하지 않아서 결국 매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아마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고집쟁이 에피소드가 최소 한 개 이상은 있을 겁니다.

9살, 또는 10살 때였습니다. 학교 숙제였었을까요? 감자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키웠다고는 해도 사실 어머니께서 다 키운 거나 마찬가지였지만요. 화분에 키운 감자가 제법 많이 컸고 몇 달 후에는 수확까지 해서 방울토마토만 한 작은 감자를 여러 알 캐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웃분들과 함께 감자를 먹자고 하셨고 같은 건물에 살던 주인집, 옆집 아주머니와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주호가 키운 감자라고 하셨고 작은 감자를 쪄서 가져오셨지요. 그때 옆집 아주머니께서 내가 다 먹어야겠다, 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농담이었음에도 그때는 심통이 났는지 서운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다 드시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얼마 후에 아무도 손도 안 댄 애기 감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의가 없다고 혼난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울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요. 감자는 결국 제가 다 먹은 것 같긴 한데 지금 생각해도 참 저도 제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심지어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군대, 취직 이후에도(사실은 최근에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그 많은 수치스러운 과거를 견디게끔 해주고 있습니다.

박정민 씨가 [쓸 만한 인간]에서 썼던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교훈을 얻고 또 성장했다. 성장해 버렸다. 성장쟁이다. 이놈의 성장판은 언제 닫히려는지.”


성장하는 고집쟁이 쥬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