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는 광대

부부 교환일기 by 다슈니

by 다슈니와 호돌이

#25년 12월 27일

토요일



당신이 치밀한 관찰과 변주를 통해 웃음을 설계하는 전략형 광대였다면, 저는 일찍이 그런 고차원적인 유머를 구사할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제 웃음의 지향점은 전략보다는 사고에 가까웠고, 연출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재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광대 그 자체. 제 어린 시절은 몸을 던져 웃기는 슬랩스틱의 향연이었습니다.

중학교 때의 기억 몇 장면이 떠오릅니다. 먼저 빨간 잉크 사건입니다. 저는 볼펜 끝을 입에 무는 버릇이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젤펜 끝을 물고 있다가 무심코 쭉 빨아들였습니다. 그 순간 제 입안은 선명한 선혈 같은 빨간색으로 가득 찼고, 짝꿍은 경악하며 외쳤지요. “선생님, 다슈니가 피를 토해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교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모았지만, 정작 가장 놀란 사람은 저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난리를 겪고도 두 번이나 다른 색의 잉크를 더 마신 뒤에야 버릇을 고쳤다는 사실입니다.

부황 사건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어느 날 이모네 집에 혼자 있다가 텔레비전 옆에 놓인 귀여운 작은 유리컵들을 발견했습니다. 컵처럼 생긴 그것을 입에 대고 장난치다 그대로 잠이 들었을 뿐인데, 깨어나 보니 입가에 동그랗고 시커먼 멍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부황기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지요. 멍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절망은 다음날 학교에 가야만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마스크를 끼고 등교했고 친구들은 짧은 시간 안에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콧수염이 나서 가렸다는 둥, 넘어져서 앞니가 부러졌다는 둥.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한 번 웃음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제 별명 중 하나는 슬라이딩의 여왕이었습니다. 이틀에 한 번, 심할 때는 매일같이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하굣길,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내리막길을 달리다 방지턱에 걸려 문자 그대로 날아올랐다가 쾅하고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친구 말로는 그때 몇 초간 정신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제 이마에는 그날의 흔적이 훈장처럼 볼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소소하면서도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들을 다량 보유한 채, 저는 오랫동안 찐 광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사회생활이라는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정신머리라는 것을 획득하게 됩니다. 어버버함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어떤 이들은 제가 변했다며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저의 어리숙함만을 저의 정체성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지금도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덜 사고를 치고 제법 평범해 보이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지요. 제 추구미는 분명 똘똘함인데, 어쩔 수 없이 제 안의 어리숙함이 틈만 나면 슬쩍 새어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그 웃음의 온도를 조절해 가며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정교한 설계로, 누군가는 뜻밖의 사고로. 큰 웃음이든 작은 미소든 결국은 서로의 하루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는 힘이니까요. 오늘도 저는 광대와 사람 사이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며, 가끔은 여전히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제 나름의 속도로 하루를 건너고 있습니다.


평냉의 담백함을 꿈꾸며 오늘도 비냉 다대기를 휘젓는 윤다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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