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발자전거를 타보셨나요?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1월 3일

토요일


젤 펜! 기억납니다. 모나미 볼펜과는 달리 부드럽게 써지던 펜이었지요. 색상도 다양해서 인기가 제법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수업시간에 젤 펜 뒷부분을 빨아들이다가 터져서 혀가 검게 물든 기억이 납니다. 처음 느껴보는 괴이한 맛이었어요. 물컵을 입에 대고 숨을 마셔서 진공상태로 붙이던 것도 해봤어요! 다슈니처럼 심하게 부항자국이 남지는 않았지만요. 입에 동그란 부항자국을 내고 학교 갈 걱정을 하는 다슈니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자주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다치는 일은 많이 줄어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다슈니는 어릴 때부터 워낙 자주 넘어져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잘(?) 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넘어졌음에도 어디가 부러지거나 관절을 다치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로는 굉장한 재능인 셈입니다. 타고난 유연성도 한몫했겠지만, 제 짐작이 맞다면 오랜 경험을 통해 실전압축낙법을 몸이 절로 익혀낸 게 아닐까요.

저는 운동신경이 조금은 좋은 편이라 잘 뛰기도 하고 여간해선 넘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몸도 뻣뻣하고 낙법도 할 줄 몰라서. 별거 아닌 일로도 크게 다치는 편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삐끗했는데 외측 인대가 파열된다던가, 넘어졌는데 팔을 잘못 디뎌서 팔꿈치 인대가 파열된다던가 하는 일 말이죠.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인대를 다치는 건 어떻게 보면 뼈를 다치는 일보다 더 후유증이 남곤 하니. 다행이라고 치부할만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8년? 아니면 9년 전이었나요? 다슈니의 작은아버지 댁에 갔을 때의 일이었죠. 사촌동생이 타는 외발자전거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타본 적은 없었으나,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촌동생들과 밖에 나가서 타보았지요. 운동 신경이는 조금 자신이 있었는데, 완벽한 오판이었습니다. 외발자전거는 중심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안장이 고정되어있지 않아서 몸이 뒤로 홱 넘어가버린 겁니다. 그때도 넘어지면서 오른팔로 땅을 짚었는데 오른 손목을 삐끗해서 몇 주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문득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게 외발자전처를 타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법 익숙해졌노라 싶으면서도 위태위태하고, 넘어져 크게 다치기도 하고. 행복과 불행이라는 이름의 양쪽 페달을 끊임없이 밟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듯합니다. 우리의 뇌는 언제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하죠. 한쪽으로 치우쳐서 넘어지는 일이 없게끔 강제로 중심을 맞추는 항상성. 그래서 처음에는 굉장히 기뻤던 일들도 금세 무뎌지고. 괴로웠던 일들도 견딜만해지기도 합니다.

외발자전거라는 착상이 글을 쓰기 전에는 좋았다고 느꼈다가도 이렇게 써놓고 보면 어쩐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일이려나요(아님). 영원히 이어지는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괴로움도 없겠지만, 부디 좋은 날들의 비중이 높았으면 합니다.

어째 세상은 점점 더 멋지게 변해가는 것 같은데 우리네 삶은 초심자가 타는 외발자전거처럼 비틀거리기만 하네요. 우릴 내버려 두고 다들 저 멀리 떠나가는 것 같은, 외딴섬에 남겨진 것 같은 초조함도 있습니다. 그래도 새해에는 비틀비틀 중심을 잡지 못하더라도 다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당신도,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다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자고요.


새로우면서도, 똑같으면서도, 조금이나마 달라진, 김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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