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환일기 by 다슈니
#26년 1월 17일
토요일
최근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을 읽었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무겁다고 느끼는 소재는 되도록 멀리하는 독자입니다. 황정은 작가의 책 역시 몇 권 시도했다가 끝내지 못한 적이 있었지요. 새해를 맞아, 황정은 작가의 책 중 비교적 읽기 수월하다고 느꼈던 『디디의 우산』 완독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디디의 우산』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인물은 ‘김소리’였습니다.
열아홉의 김소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인매장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두 살 위의 배지혜는 김소리의 눈에 무척 능숙해 영락없는 어른으로 보이지요. 어느 날 프라모델 부속품을 훔치는 아이들을 적발하게 되고, 배지혜는 아이들을 추궁하다가 꺼지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스물아홉이 된 김소리는 서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책의 뒷내용이 궁금하다며 포장을 훼손한 아이들 앞에 서게 되죠. 김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10년 전 배지혜의 그 말을 똑같이 반복합니다. 아이들에게 꺼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중년의 손님은 김소리에게 정말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 부끄러움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서점을 떠납니다. 그 순간 김소리는 열아홉의 내가 어른스럽다고 믿었던 스물한 살의 행동을, 스물아홉의 내가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결코 어른스럽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죠.
이 장면에서 저는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스럽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이들을 못 본 척 방관했을까요, 아니면 경각심을 주겠다는 핑계로 경멸어린 시선을 내뿜으며 아이들에게 수치심과 모멸감만 안겨주지는 않았을까요. 어느 쪽을 떠올려 보아도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저는 이 고민을 김쥬둥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당신은 제게 교보문고 창업자인 신용호 회장이 정한 내부 규정을 들려주었습니다. 책을 훔치다 적발되더라도 절대로 도둑 취급하며 망신을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좋은 말로 타이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무안을 주는 방식이 아닌, 타인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책임을 묻는 그 적절한 거리감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도 답 없는 질문을 계속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김소리에게 질문을 던졌던 중년의 손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정말 더 나은 대안을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김소리의 언니가 분노했듯,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어른인 척 훈수만 두고 떠난 무책임한 관조자였을까요. 책을 덮은 뒤에도 인물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고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스스로에게로 돌아옵니다. 나는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어른이었을까. 책임질 수 없는 말로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떠나온 적은 없었는지, 나의 어른스러움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서툰 모방은 아니었는지. 밀려오는 부끄러움 속에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금 곱씹어 봅니다.
그러고 보니 황정은 작가는 참 좋은 작가네요.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오래 생각하게 만들다니요. 올해는 황정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른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는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