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26년 2월 1일
일요일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을 다슈니와 함께 보고 왔습니다. 사실 저는 전부터 몇 번이고 집에서 보려 했으나 끝까지 보지는 못했던 영화입니다.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만, 집에서 넷플릭스나 VOD로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애초에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소설책이나 만화책이라면 모를까 어쩐지 영화나 드라마는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넷플릭스의 가장 유명한 콘텐츠가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면서 스크롤을 내리는 거라니, 사람 사는 게 정말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네요.
한국에서는 제목이 길다 보니 앞부분만 축약했지만,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입니다. 작중에서 메리의 입을 통해 소개되는 시구죠. 무구한, 그러니까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배우들의 열연
직관적으로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음울하고 조도가 낮은 편입니다. 심지어 추운 겨울이라 창백하고, 어둡고 푸른 이미지가 깔려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짐 캐리, 조엘의 표정만 봐도 그렇죠. 짐 캐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릴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연기나 과장된 톤의 희극 연기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중간중간에 감초처럼 끼워넣긴 했어도 조엘의 표정과 눈에서 웃음은커녕 깊은 우울의 흔적만이 흉터처럼 남아있죠.
마찬가지로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 또한 빛납니다. 단순히 발랄하거나 통통 튀는 캐릭터가 아니라 양극성 장애를 앓는듯한 뉘앙스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엘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지리멸렬한 감정과 분노, 자기혐오와 환희.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오롯이 보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굉장히 신나게 연기하는 게 느껴질 정도랄까요. 짐 캐리가 깔아준 눅눅한 감정의 배경 속에서 마음껏 뛰노는 케이트 윈슬렛의 열연의 향연.
이제는 모두 스타가 된 라쿠나의 직원들도 우리 속을 잘 뒤집어줍니다. 맹한 베테랑 연구원 마크 러팔로와 사내 인기 직원 커스틴 던스트, 추억+선물+팬티도둑 일라이저 우드, 유일한 정상인인 줄 알았으나 메인 빌런급 톰 윌킨슨까지. 빠짐없이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2004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아마 대부분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보려고 했던 분들은 말이죠. 저처럼 미루고 미루다가 20년이 훌쩍 지난 세월에야 관람한 분들도 있겠지만요.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서로가 지긋지긋해진 연인이 홧김에 서로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 기억삭제를 의뢰한 조엘의 머릿속에서는 SF적인 활극이 벌어지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2월 13일, 14일, 15일, 그리고 16일까지. 나흘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죠. 마지막으로 어떤 선택을 하기까지 말이죠.
*오프닝 시퀀스
17분에 달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로맨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교과서와도 같이 진행됩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남자와 외향적이고 톡톡 튀는 여자. 남자는 밸런타인데이 당일에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일탈을 통해 낯선 곳에서 운명 같은 만남을 갖게 됩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둘은 서로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마법 같은 사랑이 시작되려는 찰나, 차창을 두드리는 낯선 남자의 등장과 함께 오프닝 시퀀스가 마무리됩니다.
*사건의 재배치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말미에 재차 반복됩니다.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은 어째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배치했을까요? 이야기의 순서를 재배치할 때는 어떤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니까요. 그래야 보고 듣는 사람들의 이해가 쉽고 자연스럽게 때문이겠죠. 사건의 순서를 재배치하는 대표적인 장르는 추리극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범인이나 답지를 가려놓고 사후에 발견된 단서를 통해 답을 찾는 장르이기에 몇몇 사건을 블러처리하거나 재배치하는 건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멜로, 로맨스 장르에서 결말을 앞으로 끌고 오다뇨. 이건 거의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추리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기서 찰리 카우프만의 영리하고 뛰어난 설계가 빛을 발합니다. 아마도 미셸 공드리 감독과 찰리 카우프만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사랑 이야기, 그 너머의 무언가를 그려내려고 한 모양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지만, 사랑이 어떻게 지리멸렬해지고 연인이 서로에게 원수가 되는 상황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굳이 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영화로 굳이 굳이 보지 않아도 현실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이야기니까요. 소원해진 부부와 불륜, 서로의 육체만 탐닉하는 관계, 2년 만에 원수가 된 연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가십에 등장할 뿐.
만약 오프닝 시퀀스를 빼고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연인인 클레멘타인을 험담하는 조엘, 그리고 마찬가지로 연인인 조엘을 지긋지긋해하다 못해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 클레멘타인을 시작부터 마주하게 됩니다. 그 순간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들에게 몰입하기를 포기하고 완벽한 타인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지긋지긋한 이 야이기자 남의 일일 뿐이죠. 하지만 17분의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우리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에게 잠시나마 이입하게 되고, 그 뒤로 쓰디쓴 이야기가 한 움큼 입으로 들어와도 참고 견딜 수 있게 됩니다. 그 오프닝 시퀀스를 후반부에 다시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 또한 복잡하고 깊어집니다.
*LACUNA : 사라진 조각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LACUNA’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고고학에서 어떤 유물을 발견했을 때 소실된 조각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죠. 10권짜리 책을 발견했는데 4번, 7번을 찾지 못했다면 그 두 권을 ‘라쿠나’라고 명명한다는 거죠. 라쿠나, 사라진 조각이라는 뜻이니 직관적인 사명이랄까요.
찰리 카우프만은 데뷔작인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흥미로운 설정을 설명 없이 툭 내던졌듯이 ‘라쿠나’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넘어갑니다. 과학적인 설명이나 논문, 그럴듯한 외관을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연극적이기도 합니다. 연극에는 여백이 많아도 관객들이 자기만의 각기 다른 상상으로 채워 넣듯이 말이죠. 여하튼 중요한 건, 이곳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는 거니까요. 적당히 그럴듯하지만, 따지고 들자면 허술한 부분이 끝도 없죠. 하지만 따지고 드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허술해서 우리는 그저 ‘그런 기술이 있는 세상인가 보다’라고 납득하게 됩니다.
*첫 삭제 = 클레멘타인의 이름
에이킨 부부(롭과 캐리는 조엘의 절친으로 보입니다)의 집에 가서 자신을 모른 척하는 클레멘타인에 대해 하소연하던 조엘에게 롭은 우편물을 줍니다. 캐리는 반대하다가 네 빨랫감은 직접 처리하라며 집어던지고 위층으로 가버립니다. 우편물에는 ‘에이킨 부부께,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으니 둘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연출상으로 클레멘타인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삭제되는 게 보입니다. 라쿠나의 직원들이 업무를 시작한 겁니다. 이제부터 조엘이 등장하는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그의 뇌 내 기억 속이라는 걸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우편물을 들고 라쿠나 사무실에 쳐들어간 조엘은 모든 전말을 알게 됩니다. 다시 돌아와 에이킨 부부의 집에서 감정을 쏟아내다가 충동적으로 재차 라쿠나에 찾아갑니다. 복수심이었을까요. 자신 또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겠다고 막무가내로 요청하죠. 하워드 박사는 예약이 많음에도 조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클레멘타인에 대한 모든 것, 사진, 그림, 일기, 물건 등등을 가져오라 합니다. 뇌 속의 클레멘타인 지도를 찾아서 제작하고 이후에 시술을 통해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하죠. 최근의 기억부터 삭제하기 시작해서 첫 만남인 최초의 기억으로 향하는 순서입니다.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과 기억의 소실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봐도 합리적이지만, 이야기적으로 훌륭한 구성으로 보입니다. 비록 뒤죽박죽에다 거꾸로 긴 해도 이와 같은 진행이라면 여타의 멜로, 로맨스 장르처럼 사랑이 맺어지는 구간이 후반부에 배치될 테니까요.
*엉망진창 기억시술
집에 도착한 조엘은 새로 산 잠옷을 입고(낯선 사람이 오기 때문일까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자신의 잠옷을 보고 낯설어하는 이유입니다) 약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집니다. 출장시술자는 베테랑 기술자로 소개된 스탠과 허술한 조수 패트릭입니다. 이제부터 현실에서 좌충우돌 사고뭉치 라쿠나 직원들과 머릿속에서 추적을 피하고 저항하는 조엘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진행됩니다. 상상이상으로 엉성하고 프로답지 않으며 비도덕적인 라쿠나의 직원들. 현실과 과거와 환상을 오가는 조엘. 이 대비를 통해 우린 연인을 기억에서 지우는 조엘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됩니다. 도덕점 흠결의 수위를 더 낮춤으로써 비난의 방향을 라쿠나의 직원들에게 향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주인공인 조엘(또는 클레멘타인)을 좀 더 온정적이고 이입해서 바라보게 되는 거죠.
*사랑이 남긴 흉터
관객은 조엘의 차를 술 취한 클레멘타인이 긁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차문이 우그러진 이 차는 그 자체로 조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육체에 남아있는 흉터는 여전하다는 은유처럼 보인달까요 (참고로 기억삭제 후 재회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찰스강에 놀러 갔을 때, 그녀가 넘어지면서 엉덩이 아래쪽에 크게 멍이 듭니다). 조엘은 취한 클레멘타인을 비난하고 그녀 또한 그를 비난합니다. 조엘은 결국 그녀에게 심한 폭언을 내뱉고 둘의 관계는 파탄 나게 됩니다. 아마 가장 최근에 크게 다투고 그녀가 기억까지 지우게 된 원인으로 보입니다. 조엘은 실언을 사과하며 소화전에 끼인 차를 빼서 클레멘타인을 따라가지만 잡을 수 없습니다. 기억은 지워지고 있고 이 모든 건 그의 머릿속 상상이니까요. 조엘은 떠나는 클레멘타인에게 후련하다는 듯이 외칩니다. ‘널 지우니까 행복해! 네가 먼저 날 지웠잖아! 내일 아침엔 나도 널 잊어버릴 거야. 이 쓰레기 같은 관계에 딱 맞는 결말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상처와 아픔이 지긋지긋해서 이별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듯하죠.
*질투는 나의 힘
그 와중에 현실에서 패트릭은 클레멘타인과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기억을 잃은 환자의 팬티를 훔치고, 심지어 둘의 기억 자료를 빼돌려 그녀의 환심을 사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프닝 시퀀스에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스토커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데, 패트릭의 복선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패트릭과 충동적으로 사귀었으면서도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그를 스토커로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뭔가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이 모든 현실의 소리를 듣고 있는 조엘입니다.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려고 했지만, 질투는 여전합니다. 애초에 눈치를 많이 보고 소심한 조엘이 유일하게 분노하는 사안이 그것이니까요. 클레멘타인이 바람을 피울까 봐, 자신을 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남자가 바로 조엘입니다. 결국 클레멘타인이 기억까지 지우고 다른 남자는 그녀를 빼앗으려 하니 무의식에서도 각성할 수밖에요. 혼란스러워하는 조엘을 기다려주지 않고 기억은 착실하게 지워집니다. 크게 다투었던 최근부터 벼룩시장에서 싸웠던 이야기.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우린 준비가 되지 않았다, 네가 애를 볼 수 있긴 하냐며 비난하는 조엘. 클레멘타인은 크게 화내며 책임질 줄 모르는 너 같은 인간과 달리 자신은 잘 해낼 수 있다고 언성을 높입니다. 역시나 이 기억도 사라지고 다시 바깥에서는 라쿠나 직원들의 일탈이 전개됩니다.
*민폐 직원 총출동
현실에서는 카운터 상담 업무를 맡던 메리까지 조엘의 집에 놀러 옵니다. 그녀는 맥주 같은 것 말고 진짜 술을 찾습니다.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마치 클레멘타인처럼 말이죠. 패트릭은 메리에게 호감이 있는 듯 하지만, 그녀는 스탠에게 키스합니다. 조엘의 위스키를 멋대로 꺼내 마시는 메리. 여자들은 자신을 싫어한다는 패트릭. 스탠은 알면 여자 속옷을 그만 훔치라고 쏘아붙입니다. 메리는 스탠과 자신의 술만 가져와서 니체의 명언을 읊으며 러브샷을 합니다.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메리의 상황을 암시하는 말인 셈이죠. 명언집에서 본 문구라고 말하며 하워드 박사님도 언젠가 그곳에 수록될 거라며 박사를 찬양하는 메리.
*열린 책과 닫힌 책 : 클렘과 조엘
다시 조엘의 머릿속.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머그컵을 든 클레멘타인은 잠이 덜 깬 그의 볼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말하죠. ‘난 열린 책이야. 뭐든 말해주지. 쪽팔린 일까지 전부. 넌 날 안 믿는 거야?’, 조엘은 그녀의 애정 어린 투정에 ‘끝도 없이 떠든다고 대화가 되진 않는다’고 일축합니다. 클레멘타인은 널 알고 싶다고 요청하지만, 조엘은 자주 쓰는 일기조차 읽지 못하게 합니다. 둘은 연인, 사람 간의 태도에 대해 각기 다른 성향을 대표합니다. 보여주려는 사람과 감추려는 사람.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조엘은 ‘킹스’에서 식사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술을 마시는 클레멘타인을 보며 속으로 지긋지긋해하는 남자. 마찬가지로 그가 샤워 후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아 역겹다고 말하는 클레멘타인. 둘은 서로의 단점과 싫은 것들을 나열하는 ‘시체처럼 보이는 연인’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씨 없는 과일 = 시행착오 없는 사랑 = Spotless mind
다시 현실, 라쿠나 직원들의 일탈로 돌아옵니다. 일하는 도중에 새로 사귄 연인과 통화하는 패트릭. 탠저린이라는 애칭과 함께 혼란스러워하는 클레멘타인을 위로해 줍니다. 이 바깥의 소리가 다시 혼재되고, 조엘은 어떻게 탠저린이라는 애칭을 그가 아는지 의아해합니다. 지금의 파란색이 아니라 주황빛 머리카락을 했을 때의 둘만의 애칭이었으니까요. 감귤의 일종인 ‘클레멘타인’이 아니라 씨도 없고 맛있는 ‘탠저린’ 같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과 염색머리를 엮은 말장난인 셈이죠. 사람을 사귀며 시행착오 없이, 씨를 발라먹는 번거로움 없이 정답지를 커닝해 바로 탠저린을 맛보려는 패트릭입니다.
*술, 마약, 그리고 사랑 없는 섹스
패트릭을 보내고 스탠과 메리는 대마 하나를 번갈아 피우며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메리를 탐하려는 스탠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하워드 박사의 찬양을 늘어놓습니다. ‘아이는 정말 순수하고 자유롭고 깨끗한데, 어른은 슬픔에 찌들어있어, 두려움뿐이지. 하워드 박사님은 그걸 다 지워줘.’. 메리는 존재 자체로 작중 의도를 전달하는 화자로 보이기도 합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또 다른 모습이자 상징으로도 보이고요.
*마음의 흉터를 인지하는 예민함
현실의 클레멘타인은 안 그래도 감정적이고 충동적인데 조엘의 기억이 지워져 패닉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패트릭은 당장 몬톡? 보스턴? 아니, 얼어붙은 찰스강에 가자는 그녀의 생떼에 넘어갑니다. 술과 약에 취해 속옷만 입고 잠든 조엘의 침대에서 춤추는 메리와 스탠. 그들은 패트릭의 조퇴 요청을 허락합니다. 패트릭은 다시 클레멘타인 공략법, 조엘의 일기를 미리 외워둡니다. 게다가 조엘이 골동품점에서 구매한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클레멘타인에게 건넵니다. 마음에 드는 보석을 선물 받은 건 처음이라며 기뻐하는 클레멘타인.
*최초의 저항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어릴 적 상처를 고백하는 기억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워지는 기억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무관심과 다툼, 서로 상처 입히던 최근의 기억들은 지워져도 후련하고 저항하지도 않았지만, 이젠 아닙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갈수록 좋았던 시절의 추억들이 나타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다시금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는 방법론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라쿠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비도 없습니다. 싫었던 기억이건, 좋았던 기억이건 간에 계속해서 지워나갑니다. 클레멘타인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말이죠.
조엘이 처음으로 라쿠나에 저항하는 기억의 장면도 의미심장합니다. 클레멘타인의 유년기 상처를 고백했던 때. 열린 책 운운하며 클레멘타인이 너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할 때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그 이야기는 무의식조차도 잃고 싶지 않다고 저항하는 소중한 기억인 셈이니까요.
*그 말이어서 좋아한 게 아냐, 네가 해서 좋았던 거지
얼어붙은 찰스강에서 누워 사랑을 속삭였던 기억까지 왔습니다. 조엘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애정을 입 밖으로 드러낸 기억은, 아마 둘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이었던 모양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미 조엘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후인데도, 그녀는 자꾸만 얼어붙은 찰스강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죠. 마찬가지로 소중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조엘은 본격적으로 뇌 내 도피를 감행합니다. 클레멘타인을 삭제하는 라쿠나의 손길을 떨쳐내기 위한 모험인 셈이죠. 멈춰달라고 해도 현실에 들릴 리가 없고. 아무리 도망쳐도 사랑의 기억은 계속 소실되어 갑니다. 일견 죽음에의 은유가 보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죽는다는 건 결국,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잊히며, 사라지는 것일 테니까요.
현실에서 클레멘타인과 찰스강에 온 패트릭은 조엘의 일기를 그대로 속삭입니다. 하지만 클레멘타인은 기뻐하기는커녕 충격받은 표정으로 일어나서 집에 가겠다고 하죠. 패트릭의 의도와 달리 조엘과의 기억을 자극하는 그의 스토커식 표절 연애법은 역효과인 모양입니다. 아마도 극도의 위화감이 오히려 그녀를 각성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후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