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을 거슬러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1월 16일

금요일



참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니. 저도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자. 아니, 그냥 쉽건 어렵건 그냥 판단하려고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요. 판단하지 않는다는 건 곧 생각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니까요.

신경과 전문의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에 나온 환자 엘리엇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는 전두엽 근처에 생겨난 작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였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지능 또한 수술 전후 모두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단순한 결정은 물론이고 회사에서의 일 또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고 그의 삶은 무너지게 되었다고 해요. 종양을 제거하면서 전전두엽의 일부가 손상되었고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거죠. 그의 이성과 합리는 여전히 문제가 없었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그 어떤 결정도 판단도 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엘리엇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때때로 불필요하고 혐오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제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감정이 없다면 판단도 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다니.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거겠죠. 생각해 보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호오가 절 이루고 있긴 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계속 그 원류를 따라가 보면 ‘그냥’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담론은 인간의 이 본능적 비합리성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수긍해야 억지를 부리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대충 알고, 쉽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게 더 많았고. 재밌고 호기심이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싫어’라는 이름표가 달린 것들이 너무도 많아졌습니다. 때로는 좋았던 것에도 ‘싫어’ 딱지가 붙고. 감정을 쓰고 싶지 않은 것들에는 하나같이 ‘싫어’와 ‘무시해’의 딱지가 붙었습니다. 감정의 차압딱지가 붙은 물건, 사람, 행위, 지역 등등 모든 것들에 혐오와 저주, 또는 무관심을 주게 되는 것.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든다는 건 그렇게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겁내는 게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무지한 어린아이가 될 수 없죠. 그렇기에 다슈니가 제시한 문장을 실천하려면 본능을 거스르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겠어요. 척추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이 들 때면 거꾸로 말해보는 거예요. 먹기 싫은 음식들이 많다면, 한번 먹어보자. 뭔가를 하기 싫다면 역시나 뭐 한번 해보자! 어떤 사람이나 그의 행동이 너무너무 싫어도... 눈을 질끈 감을지언정, 그래 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적어도 너무 싫어!라고 외치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볼게요.

그렇다면 쉽게 좋아하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다슈니가 했던 말에 그 해답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싫으면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데. 처음에는 싫어하려고 시간을 내서 관심을 주다 보면, 의외로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무엇을 보고 듣거나 간에 대충 보거나 무시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다면. 삶을 조금이나마 더 좋은 것들로 채워 넣을 수 있지 않을까요?


뽑기 앞에서 내가 이 인형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는 김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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