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26년 1월 18일
일요일
저는 얌전해 보이는 첫인상에 비해 은근히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말 욕심이 제법 있는 편이죠. 특히나 알코올을 섭취하면 더더욱. 하지만 말 지분이 많다는 건 말실수의 빈도도 잦아진다는 걸 뜻하겠죠. 말이 늦거나 더듬거릴지언정 말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숙고하는 최강록 님을 볼 때마다 반성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달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금값이 치솟는 작금의 시대에 침묵의 가치는 더욱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말이 많아지니까 금세 또 헛소리를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침묵은 소중한 법입니다.
제 말실수는 대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으면서 시작됩니다. 문자 그대로 단순한 말실수라면 바로 정정하면 될 일입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문제의 발단이 되고야 말겠지요. 특히 그 말실수가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비밀을 누설한 거라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네요.
비밀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척도가 바로 서로 간의 비밀을 얼마나 잘 지켜주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거대한 비밀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그 무게와 괴로움은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어렵긴 한가보다, 정도?
심지어는 비밀을 지키지 못해서 파국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소비하며 코웃음을 치곤 했지요. 물론 제가 얼마나 의지가 박약하고, 고통에 취약한 인간인지 아는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톱을 채 뽑기도 전에 눈물을 쏟아내며 비밀기지를 불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게 비밀을 알려주지 않길 바라기도 합니다. 애초에 모르면 누설할 수도 없으니까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발사(또는 갓장이)가 만약 저였다면. 정말로 몸져누웠을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동화를 볼 때는 그냥 비밀을 잘 지키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우리 모두가 알지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만큼 강력한 저주는 없다는 것을. 절대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그 비밀의 무게에 비례한 괴로움을 당사자에게 선사합니다. 비밀을 입밖에 내뱉으면 편해지지만, 그 이후의 삶은 다른 의미로 괴로워지겠죠.
‘그게 왜 힘들어? 말 안 하거나, 대충 잊어버리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하는 분에게는 이런 비유를 들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비밀의 저주는 예컨대 머리 위에 컵을 얹고 물을 가득 채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죠. 당신은 평생 그 물컵을 떨어뜨려서도 안 되고 물을 쏟아서도 안 됩니다.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요. 이발사나 갓장이처럼 대나무숲으로 뛰어가서 물컵을 내동댕이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벌써 포기하고 싶어 지네요. 설사 물컵을 지켜낸다 해도 당신은 정신력의 상당수를 매일 그곳에 허비해야 할 겁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크고 작은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종교인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점쟁이나 역술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비밀의 괴로움은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 훌훌 사라지곤 하니까요. 다슈니와 제가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 은밀한 비밀과 유치한 고민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죠.
로또 1등이 되면 그 비밀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하는 김쥬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