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생각하기

by 호돌이

by 다슈니와 호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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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기억에 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한자의 뜻을 보곤 합니다. 한자어에 단어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겠죠. 기억(記憶), 기록할 기, 생각할 억. 기록한 걸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시 떠올린다는 뜻이겠네요. 별개의 이야기지만, 생각할 억, 하니까 돈을 생각한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요? 억을 생각하다니요, 억ㅋㅋ.

중국 속담에는 이런 말도 있다고 합니다. 총명이 둔필만 못하다. 그러니까 선명한 기억이 흐릿한 잉크만 못하다는 거겠죠. 지금처럼 뇌과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기억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적어둔 글귀나 영상매체처럼 저장한 자료를 그대로 불러오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기억을 떠올릴 때 다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라고 하죠.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겪었던 순간과 완벽하게 같은 기억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의 기억이 자주, 쉽게 왜곡되고 각자 좋을 대로 기억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모양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봐도 100명이 전부 다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진술하는 이유.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정말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거겠죠.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쿠가타와 류노스케의 소설 <나생문>과 <덤불 속>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작중에서는 살인사건을 각자 다르게 진술하게 되면서 재판이 미궁으로 빠집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서 물어보기까지 하는데도 말이죠. 물론 라쇼몽에서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건을 윤색해서 진술하긴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거짓말할 의도가 없어도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해 완벽하게 정직해질 수 없으니까요.

누군가에게 들은 사건 또한 자기만의 프리즘, 세계관으로 이해해서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어떤 것들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접착제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무작위의 단어 100개는 외우기 힘들어도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재밌는 소설은 술술 외우곤 하니까요.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한 건 다슈니를 보고 항시 반성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악필인 데다가 게을러서인지 저는 좀처럼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딱히 기억력이 좋은 것도 아닌 주제에 말이죠. 다슈니는 기억력도 좋고 기록도 열심히 하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좀 더 솔직히 고백과 변명을 첨가하자면, 저는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너무 상세히 기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뇌내에서 기억을 발효시켜서 이미지와 뉘앙스로 떠올려야 창의력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저 혼자만의 근거없는 미신론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약간의 회의감이 들긴 합니다. 흘러가는 강물에 소중한 기억을 흘려보내고, 그저 잊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기억은 과거의 재구성이고, 그건 결코 원래의 기억과 같을 수 없다. 라는 명제를 항시 명심한다면 메모하는 습관이야말로 하릴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을 붙드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기를 나누며 기록하는 것에 마음이 조금은 놓입니다. 이 또한 기억을 재구성해서 만든 이야기일 뿐이지만, 아예 잊게 되어버리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요.


호돌이 유행어 : 그, 저기, 뭐냐, 있잖아요, 그, 뭐였지?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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