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바이러스를 아시나요?

by 호돌이

by 다슈니와 호돌이


말과 언어에는 시대적 맥락이 있다고 하지요. 특히나 최근에는 끊임없이 신조어나 밈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동시에 잊히거나 쓰지 않는 사어도 많습니다. 오늘 불현듯 떠오른 단어, 해피 바이러스도 마찬가지겠지요.

행복 세균, 해피 전염병이라고 하면 이상한데 해피 바이러스는 이질감이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들어와서 익숙해진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흔든 이후로 우리 모두 바이러스에 대해 조금이나마 잘 알게 되었습니다.

세균과는 엄연히 다르다던가, 굉장히 작다던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도 모를 무언가라던가. 세포를 숙주로 삼아 번식하며 변이가 빨라서 백신을 개발하기 힘들다거나. 전염성이 굉장히 강하다던가. 오히려 세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유익한 바이러스도 많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 말이죠.

다시 해피 바이러스로 돌아오면 한국에서 해당 단어는 이미 세기말, 세기초에도 많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해피 바이러스라는 만화책이 2002년도에 출간되었다는 정보가 검색되는 걸 보니, 그전부터도 쓰였던 모양입니다.

사후적으로 굳이 끼워 맞추기를 해본다면 97년도 IMF 외환위기 사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국민 개개인으로도 암울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에 절망한 시대. 그럴 때일수록 웃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해피 바이러스”라도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 말이죠.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시대에 바이러스라도 퍼뜨려서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물론 그전부터 꾸준히 쓰여왔고 해외에서도 쓰였다,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봅니다.

뜨겁고, 열정적이고, 감정에 솔직한 시대를 지나 그 모든 신파가 지루해지는 2010년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쿨하고 시크한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진지하거나 뭔가를 파고들거나 감정에 솔직한 이들은 중2병이라거나 오글거린다는 비아냥과 조롱을 받으며 자취를 감추었지요. 그리고 2020년대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다시 쿨함은 쿨찐(쿨한척하는 찐따)으로 조롱받고 감정에 솔직하거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오덕후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피 바이러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 건 시대적 맥락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NFP로 대표되는 엥뿌삐들이 과거에는 해피 바이러스로 불리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개인마다 호오는 있을지언정 쿨함과 시크함에 지친 사람들이, 세상이 다시금 팍팍해지며 AI가 우릴 도태시킬 것만 같은 디스토피아의 시대에. 해피 바이러스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건 행복한 일일 겁니다. 소리 내어 웃고 우는, 때로는 화내고 사과하는 행위 말이죠. 다슈니와 달리 저는 감정을 숨기며 살아왔습니다. 숨죽여 웃고 속으로 울거나 화를 참고. 정답은 없겠지요. 하지만 애써 감추더라도 이미 태어난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심상에 흉터를 남기고야 말지요.

그러니 부정적인 감정 또한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그렇게 희로애락의 씨앗이 담긴 밭에 환한 웃음과 때때로 눈물이 더해진다면 비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제 곁에 있는 해피 바이러스 다슈니에게 감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노홍철 님의 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개운한 웃음이 소중해진 시대에 서로 얼굴만 봐도 웃게 되니 그저 좋을 뿐입니다.


웃음세균 호돌이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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