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행복의 기질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거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아마도 약간은 행복하게 태어난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쉽게 행복해지는 편이거든요. 무언가를 가져서 행복하다기보다는, 딱히 이유가 없어도 괜찮아지는 쪽에 더 가까워요. 대가리 꽃밭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가리 꽃밭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저를 과분하게 사랑해 준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매일 할아버지 손을 잡고 뒷산 약수터에 가던 기억이 있어요. 어느 날은 제가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요. 금방 찾았음에도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몇 번이나 우리 다슈니가 너무 예뻐서 유괴당한 줄 알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며 네가 그 정도로 예쁘진 않았다고 놀렸지만, 저는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그렇게까지 걱정될 만큼 소중한 아이였다는 사실이요.
사랑 안에서 자라서였을까요. 저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크게 웃고, 크게 울고, 화도 잘 내고, 사과도 잘하는 사람. 끊임없이 실수하고, 그만큼 자주 고개를 숙이는 피곤한 스타일이랄까요. 감정을 숨기지 않는 대신, 그 뒤처리를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제 추구미는 차분함과 침착함입니다. 추구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닿기 어렵기에 추구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여전히 제게 너무 먼 과제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서 더 배우고 싶어지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해피 바이러스라는 말을 듣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때의 저는 그 표현이 오글거리고, 구식이고, 어딘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해피 바이러스답지 못했네요. 솔직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려하지 못했던 순간들, 감정이 앞서서 상처를 남겼던 장면들이 떠오르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 시절의 저는 웃음을 나누는 법보다, 감정을 쏟아내는 데 더 익숙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조금 차분해지려고 애쓰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고,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일을 할 때면 과거의 요란한 자아가 자꾸 고개를 내밉니다. 저는 그 모습이 불편한데, 회사에서는 또 그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혹은 둘 다 나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저는 지금, 요란함과 차분함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배우고 있는 중이겠지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온 호돌이가 웃음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면, 반대로 감정을 앞세워 살아온 저는 차분함의 가치를 배워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지점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로 얼굴만 봐도 웃게 되는 우리가, 그저 좋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가리 꽃밭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