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호돌이의 일기를 읽으며 ‘이유 없는 이유’라는 역설적인 문장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목적 지향적인 삶을 강요받던 우리에게 ‘그냥’이라는 단어가 때론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저는 자타공인 취미 부자입니다. 식물 키우기, 뜨개질, 비즈 공예, 독서와 필사, 수영과 요가, 요즘은 다소 뜸해진 우쿨렐레 연주, 그리고 갓 내린 커피와 와인 한 잔까지. 취미 부자인 저를 혹자는 두고 끈기가 부족해 이것저것 겉핥기만 하는 것이라 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이 행위들은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순수한 몰입의 파편들입니다.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 시간들은 지극히 비경제적일 테지요. 한 땀 한 땀 코를 잡는 수고로움보다 기성품을 사는 것이 빠르고, 흙을 만지는 노동보다 완성된 꽃 한 송이를 사는 것이 훨씬 간편한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온기가 저라는 사람을 비로소 숨 쉬게 합니다.
최근 뒤늦게 시작한 SNS와 블로그는 제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그저 내가 먹은 맛있는 간식과 소소한 일상을 기록했을 뿐인데, 누군가 내 세계에 발을 들이고 공감을 표하는 과정이 생경하면서도 즐거웠습니다. 그동안 타인의 이야기를 접하며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영역에 직접 발을 내디뎌 보니 알 것 같더군요. 이것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끄는 행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 아카이빙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의미 있는 유희라는 것을요.
호돌이가 인용한 송길영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그게 돈이 될까요?”라는 질문 대신 “그게 당신을 즐겁게 하나요?”라고 물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20년 전 극단에서 만난 인연들을 떠올려 봅니다. 무대의 화려함과 달리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반짝이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은 제게 경외심을 줍니다. 그들에게 연극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였습니다. 효율의 시대를 역행하는 그들의 고집스러운 순수함이, 어쩌면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또한 이제는 저의 과몰입하는 성향을 긍정해보려 합니다. 이제는 일과 삶을 억지로 분리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곧 나의 일이 되고 나의 기록이 곧 나의 자산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돈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이 기록들이 쌓여 훗날 내가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의 도서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오케이’ 아닐까요. 남편이 꼬마 호돌이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듯, 저 역시 제 안의 다슈니가 마음껏 좋아하는 것들을 탐닉할 수 있도록 기록의 성을 쌓아보려 합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데 이유를 붙이지 않기로 한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