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코에 대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다 보니 예능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십여 년 전 추석 특집이었던가요, 한 출연자가 강력한 콧바람으로 불을 끄던 모습이었지요. 그 장면을 보고 우리 집 호돌이의 콧바람도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장난 삼아 가스레인지 불을 콧바람으로 꺼보라고 했지요. 그런데 웬걸, 정말 대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동영상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추석 메시지와 함께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웃음이 나요. 구글 계정에 저장되기 이전이라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그 휴대폰 속 영상들이 문득 다시 보고 싶어 지네요.
저는 호돌이와는 반대로 코도 작고 콧구멍도 작은 편이에요. 게다가 비염까지 있어서 냄새에 조금은 둔감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늘 코를 킁킁거리며 다녀요.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둘 다 예민한 편이라 아주 미세한 냄새도 금방 알아차리고 소곤거리곤 해요. 밖에 나가 보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만큼 예민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게 또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운전을 시작하면서 대중교통을 탈 일이 줄었는데, 가끔 지하철을 타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수많은 냄새가 한꺼번에 느껴져서, 냄새 때문에 칸을 옮긴 적도 있었지요.
몇 해 전, 우리 집에 아직 건조기가 없던 겨울,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있었던 일도 떠올라요. 어디선가 묘하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저는 또 범인을 찾겠다고 열심히 킁킁거리기 시작했지요.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아서 누구일까 의심하며 호돌이의 옷까지 확인했어요. 그런데 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였던 거예요! 제가 입고 있던 옷 중 하나가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 냄새가 났던 거지요. 다행히 캐리어 안에 갈아입을 옷이 있어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지요.
겨울처럼 해가 짧거나 빨랫감이 많아 건조대가 가득 찼던 시절에는, 가끔 빨래에서 냄새가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세상이 좋아져 건조기라는 게 나오지 않았겠어요? 건조기는 제가 생각하는 21세기 최고의 가전제품이에요. 건조기 덕분에 이제 우리 집에서는 덜 마른빨래 냄새를 맡을 일이 거의 없어졌지요. 세탁 박사 호돌이가 열심히 세탁법을 연구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게 건조기는 그냥 빛 같은 존재예요.
우리는 좋아하는 집안일도 조금 달라요. 호돌이가 ‘쓸기’ 영역을 좋아한다면, 저는 ‘닦기’ 쪽이지요. 호돌이는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저는 설거지를 하고 세탁물을 개는 일을 맡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잘하는 일을 나누며 살고 있어요. 물론 신혼 초에는 집안일로 투닥거린 적도 있었지요. 그때 저는 지방 공연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어요.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세탁이 늘 완벽하게 되어 있기에, 저는 호돌이가 세탁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약 석 달 동안 세탁기를 한 번도 돌리지 않았던 거예요. 결국 호돌이가 조심스럽게 왜 세탁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저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인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지요. 그때만 해도 좋아서 했다기보다 해야만 해서 했던 집안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나누게 됐어요.
우리는 요즘도 함께 킁킁거리며 살아가고 있지요. 조금 예민하면 어떤가요. 덕분에 우리 집에는 늘 기분 좋은 햇살 냄새가 나는걸요.
오늘도 킁킁거리며 살아가는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