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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드리븐리포트 Oct 29. 2024

퇴사하면 전문성도 사라질까?

직업이나 회사 이름이 아니라 '경험'이 당신을 결정한다.

"오늘도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쁜 하루였다."


성실하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한 퇴근길에 보람찬 느낌이 들다가도, 무심코 떠오른 이 한 문장은 한순간 몸이 축 처지게 만든다. (현타가 오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샌가 새로운 자극에 무감각해진,

새로운 관계에 대한 호기심도 없는,

딱히 변화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뭔가 해보고 싶은 열정조차 생기지 않는,

혹시 여기에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면, 한번 같이 생각해보고 싶어 이 글을 나눈다.


최근 링크드인 DM으로, 개인적으로는 카톡으로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전문성'에 대한 질문을 해 주셨다. 첫 번째 퇴사에 대한 글을 읽은 사람들이 이제 약 7만 명에 가까워지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https://brunch.co.kr/@datadriven/22


단순히 '퇴사' 혹은 '이직'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장'에 대한 갈증들이 점점 커지는 흐름이라고 보인다. 성장에 대한 고민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하나의 결정이 '퇴사' 혹은 '이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회사라는 명함을 떼면 내 전문성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전문성이라는 것은 소위 '사'자 붙은 자격증, 그것도 아니라면 '기사' 자격증  정도는 갖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전문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퇴사한 당신은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다소 공격적이지만, 4가지의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는데, 

"내가 가진 능력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첫 취업을 준비할 때, 자기소개서를 처음 작성할 때, 내 경험을 돌아보면서 모두가 마주쳤던 질문일 것이다. 이제 3,40대로서 우리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전문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도,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방향성을 갖고 진행하는 것에도 익숙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에게 마주쳤던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대로 50대가 되면 전문성이 생길까?"


한 분야에 또는 한 회사에 꾸준히 종사하다가  언젠가 나이가 차서 회사를 비자발적으로 나가야만 할 때 그때는 비로소 전문가 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다시 위 4가지 질문을 돌아보면,  '전문성이란 외부에서 평가받는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이 가정은 결국 외부에서 정해둔 목표와 틀에 도달하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프레임을 만든다. 만약 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우리는 평생 외부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되고, 사실은 그렇게 지금까지 억지로 억지로 살아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밝은 미래가 올 것 같지만, 쳇바퀴처럼 또 다른 목표와 성취를 강요받는 것 같다. 



하지만,  '전문성'을 외부에서 평가받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게 나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외부에서 평가받는 프레임을 벗어나 내가 나다운 능동적인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포트폴리오'다. 포트폴리오는 쉽게 말해서 내가 수행했던 것에 대한 기록을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자격증이나, 회사의 백그라운드가 아닌 내 경험과 성과를 남기는 것이다. 


'일은 배신하지 않는다'의 작가 김종민 님은 포트폴리오 하나로 구글 입사제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분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의하기 이전에, 본인의 성과가 쌓인 프로젝트 포트폴리오가 자연스럽게 커리어를 이끌어준 케이스인데, 책 서문에도 이렇게 쓰여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고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본인의 자아발전을 위해서,
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를 정의하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나만의 일을 하는 그런 모습을 꿈꿨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기도 하지만, 

어떻게 (How) 그것을 이뤄가는지는 바로 포트폴리오였다. 


정리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전문성이란, '내가 정한 분야에서 축적되는 경험을 나의 언어로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정한 분야'여야 하는 이유는 외부에서 정의한 것들 (자격증 등)을 먼저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맞추려다 보면 선택지를 한정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자의든 타의든 선택한 경험에서 내가 정한 분야를 먼저 정하고 포트폴리오를 쌓아간다면, 나만의 유니크한 분야가 생기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를 예를 들면, 5년 전 HR 분야에 data science를 융합해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케이스는 찾기 힘들었다. 실제로 링크드인에서 HR Analyst라는 직무는 검색되더라도, HR Data Scientist는 찾기 어려웠다. 현재는 이런 직무 이름으로 채용하기도 하고, 대기업의 HR Analytics팀에서도 HR data scientist라는 이름으로 채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축적되는 경험'은 결국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고,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과정으로써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의한 방식의 전문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외부에서 인정받고 평가받는 데 목매이기보다는,  내가 목표로 하는 '전문성'의 방향에 맞는 회사를 선택할 기준이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면접을 보면서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회사를 다닌다는 것도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신입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프로젝트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프로젝트 안에 나의 고민과 철학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포트폴리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전문성을 쌓아 올렸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내 이야기를 나눈다. 

앞서 '퇴사 후 시간의 무게'에 대한 글에서 글의 흐름상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 데이터사이언스 공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면서 부장님께 요청했던 것이 '퇴근시간' 외에 추가로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재라인'이었다. 

https://brunch.co.kr/@datadriven/23


공공기관뿐 아니라 큰 조직들은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개인이 오롯이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재라인'은 내 의견의 속도와 퀄리티를 결정한다. 

    - 속도 : 내가 제안한 의견에 대한 피드백을 얼마나 빨리 받을 수 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최종의사결정자와의 단계가 많아질수록 피드백 속도는 멀어진다. 예를 들어, 부사장님께 보고되는 나의 보고가 2주 전에 계획되어 있으면, 팀원으로 속한 내가 오늘 밤새면서 나의 고민을 쏟아놓은 보고서는 2주 동안 담당차장님, 팀장님, 실장님, 처장님을 거쳐 N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정된다. 여기서 2주 동안 최종의사결정권자인 부사장님의 의견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조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최종의사결정권자와 회의를 자주 했기 때문에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처장님, 그다음은 실장님, 그다음은 팀장님의 의견이 보고서에 반영된다.  당연히 이렇게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도 많은 부분이 개선되지만, 내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실제 니즈를 가지고 있는 최종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듣는 것은 2주 뒤이다. 다음 스텝을 나가기 위한 조직 차원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지만,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 퀄리티 : 내가 제안한 의견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사실 위에서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최종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하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처음 내가 제안하려고 기획한 내용과, 보고하기 직전 내가 제안했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보고서로 탈바꿈된 경험을 많이 해봤을 것이다. 여러 상사들의 의견을 섞고 조합하면서 이미 처음 내가 생각한 로직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이다. 이 단계가 되면 로직의 흐름을 맞추기보다는 보고 자체를 끝내는 것이 목적이 된다. (수정본, 진짜수정본, 진짜진짜파이널_7, 이라는 파일이름이 나오는 이유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회의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상사다.  처음 이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이유,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이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적인 부분인데, 정말 뛰어난 상사가 아니라면 이런 부분까지 흡수해서 전달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직접 듣는 것과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것은 정말 큰 차이다. 어떤 것들을 개선해야 할지, 피드백받던 분위기에서 그분의 표정과 느낌, 감정 등은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많이 부딪힐수록 정말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 혹은 그분의 깊이를 느끼면서 내면의 동기부여가 생기고,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지금도 엄청난 능력자이신 당시의 부장님 덕분에 '대리' 주제에 사장님, 부사장님, 전무님 보고를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어갔던 것 같다. 그분의 시간과 나의 시간의 가치는 왜 다른지, 의사결정을 내릴 때의 기준과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어조와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나가야 할지 등을 경험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피드백의 '속도'와 '퀄리티'를 확보하면서 조직 차원에서, 개인 차원에서 동시에 원하는 결과들을 만들 수 있었다. ('데이터 드리븐 리포트'라는 책도 이 과정에서 고민하며 나오게 된 결과물이었다.)


대리에서 차장으로 특별승진하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인사부서에서 승진을 담당하면서 특별승진을 내부자로 시킨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해야만 했던 결정이었던 것으로 안다. 특히, 기술부서에서 관리부서를 보는 입장은 기존에도 상당히 비판적이었고, 실제로 특별승진 마지막 심사였던 경영진 프레젠테이션에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경영진회의실에서, 10명 정도 되는 검은 정장을 입으신 각 파트의 경영진들이 'ㄷ' 자 형태로 앉아서 나의 성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5분 듣고 질문을 25분 동안 하는 방식이었다. 준비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조직의 대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수장들의 뼛속깊은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특히 기술부서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정량적으로 이것을 측정할 수 있는지, 왜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하셨다. 이런 대답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포트폴리오였고, 이것의 근간이 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피드백의 속도와 퀄리티였다.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 감이나 직관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그들의 의사결정을 포트폴리오 기반으로 설득하니, 이후 경영진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부분에는 오히려 차장이 되서 어떤 방향으로 더 고민할지를 건설적으로 고민하는 것을 도와줬던 경영진들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꾸준히 쌓아나간 프로젝트의 연결로 지금은 HR과 데이터사이언스를 융합한 HR 데이터과학자라는 전문성으로 다음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다루는 특성상 파이썬, R 코드를 저장해 두면 다음에도 똑같은 결과를 재현(Reproducibility)해 낼 수 있기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편리하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 업계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자연스럽게 쌓고, 이것을 기준으로 면접을 보거나, 자신의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포트폴리오의 장점 중 하나는 내가 팀프로젝트에 있어서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HR 특성상 내부데이터를 공유할 수는 없지만, 공유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여기에 정리해 뒀다. 앞으로 공유가능한 외부 프로젝트와 개인 프로젝트를 공유할 계획이다.

https://sangsucki.github.io/


외부에서 봤을 때 소위 좋은 '경력'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명함과 소속된 조직을 내려놓고 자신의 일을 고민하는 시점이 오겠지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경험'을 쌓아가는 사람은 삶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정립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전체 글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전문성은 갑자기 어떤 시점에 나에게 생겨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정한 분야에서 축적되는 경험을 나의 언어로 정의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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