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선상에 이르는 길...
백패킹을 한두 번 접해보았다면...
높은 산에 올라 멋진 풍광 속에서 별 헤이는 하룻밤을 보내 보았다면...
지금 내가 준비해 걸으려 하는 설렘과 걱정이 혼재된 심정을 짐작하시리라 본다.
그날 그 아침은 어제와 다르게 제법 아침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계절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새벽 첫 버스에 사람들은 이미 만석이었고, 몇 정거장 지나면서부터는 자리를 잡지 못해 서서 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리에 앉아 창밖의 거리를 보며 혹시나, 놓치고 빠진 물품이 없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며 되새김하는 동안 버스는 이내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새벽 시간을 운행하는 버스여서 그런지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된듯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때까지만 해도 새벽 시간이라 공항에서의 일정은 한가롭게 이루어질 것이라 혼자만의 오판을 하고 있었다.
출발 당일날 아침의 공항 모습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평일의 이른 아침부터 해외로 출발을 한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는 공항 항공사 창구의 발권기 대기 줄은 하염없이 길었고 탑승 수속자들의 행동은 더디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동발권 티켓 기기 앞의 줄이 짧아 보였고, 대기하는 사람들의 발권시간도 짧게 느껴졌다.
무인발권기 대열에 줄을 서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시스템 접속 후 예약번호를 누르고 필요사항을 입력하며 순조롭게 발권에 필요한 진행이 이루 어지는듯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권을 스캔받기 위해 기기에 올렸다. 그러나 "스캔을 위해 여권을 정확히 올려주세요"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여권을 올리고 다시 올리고...
무인발권기는 나의 여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순간 난 나의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양옆 기기에서는 유유히 비행기 티켓을 받아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를 흘기듯 쳐다보며 치나치기를 반복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했다. 다시 여권을 스캐너 위에 올렸다.
얼마나 속으로 이상 없이 인식되어 주기를 바랐는지... 전과 다르게 새로운 화면이 올라온다.
정말이지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무사히 비행기 티켓을 받아 들고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제야 이마에 주르르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그 순간 아뿔싸...! 다시 나에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하물!!!"
그것을 알아차린 후에는 나의 생각의 짧음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냥 차례를 기다려 발권을 받고 수하물을 보냈어야 했다. 다시 긴 줄을 서서 수하물을 보낼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왔다. 터덜터덜 걸으며 기운 빠진 걸음을 걷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대기하는 사람도 적었으며, 수하물을 위탁하는 시간도 짧았다. 순간 밀려오는 안도감...
"그래 앞으로 잘되려고 그랬을 거야"하며 나를 위로 하기에 이른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해외 출장으로도 여러 번 접해본 경험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외국으로 처음 출발하는 사람처럼 어리숙하기만 했다.
처음 일정은 저가항공을 이용해서 나고야로 가는 방법을 계획했었다. 비용적인 측면의 효과도 컸지만,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장점도 겸하고 있었으니 굳이 혼자 가는 길에 호사를 바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건 저가 항공사 비행 스케줄 변경이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였다. 항공사 사정으로 비행시간이 변경된 터라 취소 수수료가 발생되진 않았지만 모든 일정이 수포로 돌아갈뻔했다.
그러나 과감하게 몇 개월 전에 저렴하게 예약해둔 저가항공사 비행기 티켓을 취소를 했으며, 그 대안으로 시간의 제약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시아나 항공의 이른 시간 비행기 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 문 앞에선 순간, 뿌듯함과 설렘보다는 전에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혼자 나선 길이여서 그랬을까?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미지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간단하게 내어주는 기내식 냄새에 허기가 밀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이 자리에 있기까지 배고픔도 잊은 채 긴장의 연속으로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맛도 느낄새 없이 한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내 밀려오는 피곤함에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고야에 도착! 중부 국제공항 전철역 시계가 오전 11시 37분을 알렸다. 입국 수속과 짐을 찾는 시간외에 크게 지체되는 일 없이 JR열차로 환승해야 하는 나고야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부 국제공항 열차 시간표를 보면 붉은 테두리의 흰색 라인은 정차역이 적은 특급열차이고 그에 반해 초록색 열차는 전역을 정차하는 완행열차임을 알 수 있듯이 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효과적인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에 탑승하면 우리 내의 기차와 같이 좌석이 좌우 양쪽으로 나란히 배치된 차량은 비용이 추가된 승차권을 구입해야 한다.
일반 탑승권으로는 우리의 일반 지하철과 같은 좌석 차량에 탑승하고 이동하면 된다.
이웃블로그님들 후기의 내용처럼 환승을 하기 방법을 따라 순조롭게 JR열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열차 판매소의 직원은 한국사람이냐고 묻고는 한국어로 적힌 열차표 구입안내를 보여준다. 꽤나 많은 한국사람이 이곳 나고야역을 지나간 모양이다.
마츠모토로 가기 위해 JR열차권을 구입할 때 주의할 점은 탑승권과 좌석권을 나눠 발권해 준다. 목적지 따라 일정한 금액의 열차탑승권 구입과 자유석, 지정석에 따른 좌석권을 구입해야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평일이었던 점을 감안해서 저렴한 자유석으로 발권을 했다.
JR나고야역 마츠모토행 열차를 타기 위한 10번 플렛홈으로 향했다. 플렛홈에는 이미 마츠모토행 열차가 대기 중이었고 플렛홈의 시계는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착착 계획되로 마츠모토행 오후 1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마츠모토까지는 2시간의 열차길... 일본의 편의점 도시락 구입! 선택만 잘된다면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자유석 차량에 탑승하고 자리를 잡았다. 자유석이라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여유 있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점심시간임에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음식을 들고 탑승하는 모습이었다.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일본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던 난, 나를 영락없는 한국 여행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열차에서 냄새를 풍기며 도시락을 먹는다는 것이 나에겐 여간 불편하고 낯선 행동이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도시락의 내용은 훌륭했다. 그러나 한 가지 심심한 맛은 어쩔 수 없으니 한국의 알싸한 맛을 첨가해 풍미를 더하면 최상이 된다.
JR열차가 나고야역을 빠져나가면서 옆으로 보이는 메이테츠 백화점...
시간이 좀 더 허락되었으면 저곳 남성관 4층 캠핑용품점에 들러 이소가스를 구매하고 싶었다.
가미코치 가는 길 중간에 그나마 쉽게 구입할 곳은 이곳이었고 가미코치나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산장이나 롯지에선 비싼 가격으로 판매를 하나 늦은 시간으로 구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마츠모토까지 JR열차로 2시간...
이른 아침부터 긴장의 연속이 이어져 그랬던가? 도시락에 맥주 한 캔을 마셨더니 바로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잠에 든 것일까? 꿈속이었을까? 잠결에 들리는 청아한 일본 여성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점점 가까워져 온다.
"마츠모토~"
"마쓰모토~"
눈을 떠보니 열차는 마츠모토역으로 들어서 정차되어 있었다. 이 열차는 마츠모토에 잠시 정차하는 열차로 종착역은 1시간을 더 달려 나가노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짐을 챙겨 열차 밖으로 나왔다.
더욱이 바로 이어지는 신시마시마행 전철 시간에 맞춰 바로 환승을 해야 했다.
마츠모토역에서는 신시마시마역으로 가는 전철과 가미코치로 가는 버스승차권이 혼합 왕복 라운드 티켓을 발권받아야 한다.
즉, 한장은 가미코치로 들어가는 전철과 버스 티켓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한장은 가미코치에서 마츠모토로 나올 때 사용해야 하니 이점을 유의해 티켓을 잘 보관해야 한다.
가미코치라인의 하이랜드 레일 전철이다. 전철을 타고 다시 30여분을 더가야 신시미시마역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그제야 배낭을 짊어진 모습들이 보인다. 9월 초의 기온으로는 아직 더위가 아직 가시질 않아 여름 복장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신시마시마역에 도착했다. 산 중으로 가기엔 늦은 시간이었던지 조금은 썰렁한 분위기이다. 역에 내리자마자
맞은편에 가미코치로 가는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전철과 버스가 연계되어 있어서인지 짧은 대기시간 후 바로 환승하게 된다.
그제야 이번 일정 결정적인 실수가 벌어진다. 전철에 탑승을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야 나의 바보 같은 행동을 알게 되었다. 잠결에 황급히 내렸던 JR열차에 스틱을 두고 내린 것이다. 더운 날씨에 외투를 배낭에 넣기 위해 스틱을 내려놓고 다시 달아둔다는 것을 깜빡하고 그냥 놓아둔 것이 화근이었다.
이미 열차는 출발을 했고 분실물센터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시간만 보낼 순 없었다.
스틱은 이미 나가노 유실물 센터에 입고되었다는 것만 확인을 했다. 다시 찾기 위해서는 나가노역으로 가야 했지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가미코치는 일반차량은 들어갈 수없다. 일반 차량도 신시마시마역 인근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을 해야 한다. 그러니 외국의 일반여행자에겐 유일한 가미코치로 가는 방법인 버스이다.
자연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일까?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시기심마저 불러내는 부러움을 느꼈다.
신시마시마역에서부터 가미코치까지 대략 1시간...
버스로 가미코치로 가는 길은 고산지역으로 가는 길답게 계속적인 오르막이다.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도 드디어 울창한 숲으로 둘러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멋진 모습은 높은 지역에 만들어놓은 호수 같은 댐의 모습이다. 한 군데였겠거니 했는데 어느 정도 오르니 또 다른 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주변 경관 모습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가미코치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저 멀리 펼쳐진 북알프스 연봉들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저 모습을 보러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에 넉을 놓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미코치의 상점들은 이미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가미코치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등산보험가입이다. 입산 신고서를 작성하고 자판기에서 등산 보험료 증지를 구입해 붙이고 제출 함에 밀어 넣었다. 지나치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블로그 후기에서 본 기억을 총동원하고 안내에 적인 내용을 유추해야 했다.
가스도 구할 수 없었고, 조리 없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는 상황인데 산중의 시간은 어둠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리가타케로 가기 위한 들머리에 12시간을 달려왔다. 말도 통하지 않고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으로 말이다. 혼자만의 길이 무모함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제 시작인 이곳에 도착한 것뿐인데, 마음은 이미 지쳐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