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수학 학원말고 바둑 학원을 보냈을까?
"아빠, 이 부분이 어려워. 아빠가 좀 해줘."
올해 초, 우리 둘째 아들이 색종이를 구기며 울상을 지었다.
당시 아이는 종이접기, 그중에서도 유독 복잡한 '페이퍼 블레이드(팽이)' 접기에 빠져 있었다.
아마 6~8세 전후의 자녀를 둔, 특히 아들을 둔 부모라면 모두 알 거다.
페이퍼 블레이드의 지옥을.
어른인 내가 봐도 너무 어렵다.
책을 끼고 사는 내가 설명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 문해력이 이정도였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합체형 팽이 하나 접는데 심지어 4시간이 꼬박 걸린 적도 있다.
문득 이렇게 내가 계속 해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종이를 접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해보게 했다.
심지어 접지 못하면 그건 너의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이니 더 낮은 것부터(즉, 기초부터) 다시 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다 어려워. 아빠도 처음엔 되게 어려워했잖아. 다시 한번만 선을 맞춰볼까?"
아이는 친구에게 자랑하고픈 욕심이 더 컸던지, 낑낑대면서도 결국 완성했다.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종이접기 대장'이 되었다.
지금은 팽이 접기뿐만 아니라, 미니카, 레인저까지 섭렵했고, 웬만한 어른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접어낸다.
나는 그때 보았다.
벽에 부딪히고, 그 벽을 혼자 힘으로 넘는 과정에서 아이의 역량이 얼마나 성장하는지.
바둑이 수학 점수를 보장할까?
당시엔 나도 잘 몰랐으나 종종 듣는 질문이 있었다.
"바둑 배우면 수학 잘한다면서요?"
이제와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바둑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연산 속도가 빨라지거나, 모르는 수학 공식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바둑과 수학 교과 점수 사이에 '직행열차'는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생들을 보며 누적된 패턴과 사례를 기준으로 확신하는 것은 하나 있다.
바둑을 통해 '공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학은 결국 논리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오답이 나오면 왜 틀렸는지 복기하는 과정이다.
바둑판 위에서 수없이 집을 짓고 부수며 배운 논리력, 수가 막혔을 때 뚫고 나가려는 문제해결력, 그리고 끝까지 앉아 있는 집념.
이 '기초 체력'이 다져진 아이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수학 지식을 쏟아부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깊이가 다르다. 남들이 공식을 외울 때, 이 아이들은 원리를 파고든다.
이 기대값이 내가 수학 학원 대신 바둑 학원을 보낸 이유다.
지식보다 중요한 건 '그릇'의 크기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내가 수학 학원이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필요하다면 보내야 하고, 나 역시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계획이다.
다만, '순서'의 문제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초등은 무언가를 담는 것이 아닌, 그릇을 키우는 시기다.
초등 시기, 특히 저학년 때는 지식이라는 물을 붓기 전에, 그것을 담아낼 그릇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종지 그릇에 선행 학습이라는 폭포수를 붓는다면 어떻게 될까?
물은 다 넘치고 그릇은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우리가 흔히 보는 '고등학교 때 무너지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조금 느리더라도, 단단하고 넓은 그릇을 갖기를 원한다.
종이접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끙끙대던 그 시간처럼, 바둑 한 판을 이기기 위해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아이의 그릇을 넓히고 있다고 믿는다.
에필로그
그래서 나는 바둑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갈 때, "이겼어?"라고 묻는 대신, "재밌었어?"라고 묻는다.
지식을 채우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끈기라는 그릇은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빚어내기 힘들다.
나는 느려도 괜찮으니, 하지만 단단하게 자라기를 기다린다.
가장 튼튼한 건물은 가장 긴 기초 공사 끝에 올라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