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에올>의 멀티버스가 실존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야기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그리고 열 중 열은 악몽이다. 꿈을 꾸었을 때 마냥 좋기만 한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꿈에서나마 마냥 좋아보고 싶은데, 안 되는 일인가 보다. 아침 혹은 새벽에 일어났을 때 구체적인 꿈의 내용이 기억나는 일은 잘 없지만 어느 정도의 뉘앙스와 장르(?)는 기억이 나는 편인데, 늘 불쾌한 뉘앙스이고 장르는 대체로 SF다. 가끔은 그로테스크한 무언가이고.
꿈에서 나는 어디로 불시착할지 모르는 상태로 날고 있거나, 높은 절벽 꼭대기 같은 곳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낭떠러지에 뛰어내리거나, 벌거벗은 채로 벌거벗지 않은 척 일상생활을 영위하려고 하지만 모두가 비웃는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거나 한다. 가끔은 마주치지 않고 싶은 상대와 끝도 없이 반복되이 마주치곤 하는데, 그 대상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말 잊고 싶은 사람일 때도 있고, 기억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완전히 잊고 살던 사람일 때도 있고, 아니면 가상의 불쾌한 누군가일 때도 있다. 어쨌거나 나의 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불안하다. 만약 꿈속의 내 모습이 흔히 말하는 '멀티버스' 속 다른 나의 모습이라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하 에에올)>의 설정과는 다르게 지금의 내가 나의 '최악의 버전'은 아닐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처한 상황으로 놓고 보면야 언제나 지금의 내가 거의 '최고 버전의 나'라고 봐도 될 정도로 언제나 최악의 꿈만 꾸지만, '나'라는 사람만 놓고 보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뛰어난 내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지금의 내가 '최악의 버전'일지 모른다. 그랜드캐년 따위 쉬지 않고 꼭대기까지 달려갈 수 있는 엄청난 운동능력의 나,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 노심초사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이 있는 나, 어떤 불쾌하거나 무서운 모습을 봐도 소리치거나 무너져 내리지 않는 초인적인 내구성을 가진 나.
어려서부터 공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고, '더 뛰어난 버전의 나', 그러니까 당시의 나보다 무언가가 특별하게 뛰어난 나에 대한 상상도 자주 했었다. 장르 불문 글을 너무나 잘 쓰는 나,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손재주가 특출난 나, 노래를 잘하고 어떤 악기든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나, 축구나 야구 등등의 운동을 엄청나게 잘하는 나, 외모가 출중한 나 등등. 돌이켜 보면 그중 가장 빨리 흥미를 잃었던 상상이, '운동을 잘하는 나' 였다. 그래서, 그리고 꿈속에서의 초인간적인 내가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는 상황, 불안한 상황, 심각한 결핍의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더욱, 꿈에서 깨었을 때 그러한 신체 능력들을 부러워해본 적은 없다.
아마도 공상이 이루어졌을 때 내가 얻는 것에 비해 상상과 현실의 거리가 가장 멀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공상이 이루어진 모습이 너무나 근사하다면(예컨대 출중한 외모라던가) 그것을 쉽게 놓지 못하겠지만, 운동이야 잘하면 좋지만 지금도 일상에 문제는 없기도 하거니와 꿈속에서 운동 능력이 탁월한 다른 세상의 내가 언제나 쫓기거나 불안한 상황에만 처하니 더욱 별로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꿈속에 이따금 등장하는 불청객들 중 어린 시절 내게 나쁜 기억을 선사한 이들의 상당수가 그들의 좋은 신체 능력을 사용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꿈에서의 내가 너무 부러웠던 나머지 이른바 자각몽이라는 것을 꾸었을 때 가장 절박하게 현실로 돌아오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꿈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나에게 너무 알려주고 싶어서. 꿈속 세계에서 책을 한 권 접했고, 그 책을 접한 모두가 이 책이 세계 최고의 걸작이라 말했다. 특히 첫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문장만으로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집어 들어 첫 문장을 읽었다. 아름다웠다. 본 적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이었다. 첫 문장만으로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마치 그 뒤에 펼쳐질 황홀한 이야기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가 돌았다. 여기는 꿈이야. 현실 세계에는 이 책이 없어. 그러니까 이 문장을 현실 세계로 가져갈 수 있으면 나는 최고의 소설을 쓸 수 있을 거야.
이전에도 어떤 이유로든 현실에서 떠올리고픈 꿈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 밖에 기억해 내지 못하고 좌절하기만 한 적이 종종 있었다. 허나 신기하게도 그때는 용케도 꿈속에서 그 문장을 달달 외웠고, 눈을 떴고, 핸드폰을 찾아 지문으로 잠금을 해제했고, 녹음 어플을 켜 그 문장을 외웠다. 그리고 너무나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도 내가 새벽에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문장을 녹음한 사실을 아침에 잊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눈이 쉽사리 땅에 닿을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잠에 취할 대로 취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음성 메모를 듣고 저 문장을 접한 아침의 내적 수치심과 허무함과 허탈함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 가끔 웃는다. 지금 메모를 다시 꺼내 보니 아주 몹쓸 문장은 아닌 것도 같지만, 꿈속 그 세계에서 저 문장이 얼마나 위대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를 테니. 보여줄 수도 없고.
그렇게 꿈속에서의 나에게 빌붙어 등단이든 뭐든 해보고자 했던 어느 늦겨울 밤의 꿈은 그렇게 일장춘몽으로 끝이 났더랬다. 어떤 영화를 예매하려다 보니 몇 달 전 봤던 <에에올>을 여전히 상영하고 있는 극장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영화가 다시 떠올랐다. 떠오른 영화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주인공의 여러 순간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멀티버스 속 여러 버전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다 보니 내가 꿔온 여러 꿈속의 여러 나의 모습으로 이어지다 보니 이 일이 다시 생각났다. 어쨌거나 괜찮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을 늘 쓰고 싶으니까.
위의 자각몽에서 가장 비참한 부분은, 꿈속에서마저 그 대단한 책과 대단한 문장을 내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꿈속에서마저 그런 걸 쓰지를 못해 남의 것을 베껴와서 이 세계에 퍼뜨리려 했다니. 멀티버스 속의 더 나은 나들도 글솜씨가 아주 뛰어나지는 못하나 보구나. 하지만 이 꿈을 <에에올>에 이어 붙여 생각해 보니 아마 여러 버전의 나 중 지금의 내가 글을 가장 잘 쓰게 되려나 보다. <에에올> 덕에 난데없이 그런 희망을 얻고 간다. 조금씩 나아질 거다, 아마, 부디.
덧. 언젠간 저 문장 꼭 써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