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은 왜 연애 대신 고양이를 고민하게 되었나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어 객지에서 얻은 첫 집은 햇빛이 들지 않았다.
주택을 개조한 1층 단칸방 창에서 보이는 7할은 벽, 나머지 3할은 벽 뒤의 빌라.
좋은 점이 있다면 오밀조밀한 대학가 골목에서의 삶 치고는 소음이 없다는 것.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깼다.
조용함이 유일한 장점이던 창 밖으로 너무나 서글픈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게 정말 무서웠을 것이라고 지금 글을 읽는 당신이 공감해 주면 좋겠다.
제목이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공감을 바랄 정도로, 많이, 무서웠다.
조심조심 창문을 열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당연히 고양이었고,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도 비명을 질렀다.
처음으로 '기억'하는 고양이와의 대면은, 이런 식이었다.
'반려동물'계에 대한 나의 몰이해가 낳은 오해 인지 모르겠지만, 고양이가 개와 비견되게 보편화된 것이 아주 오래전 일 같지는 않다. 어린 시절만 해도 누구네 집에서 뭘 키운다더라, 고 하면 열의 열은 개였으니까. 고등학생 시절 처음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저자 소개의 마지막 문장이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였던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아직 기억이 날 정도로, 고양이가 적어도 내겐 흔한 반려동물은 절대 아니었던 것 같다(실제로 찾아보니 인류 역사에서 개는 1만 년 전부터 '가축'으로 사육되었고, 고양이는 5천 년 전부터 '쥐 사냥용'으로 사육된 흔적이 있어 인간과 함께한 것으로는 약 5천 년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제는 주위에 개를 키우는 사람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구분이 확연히 나뉜다. 순전히 개인적인 분류로, 모세혈관처럼 좁은 나의 인간관계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 중 열의 여덟은 고양이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지니신 부모님의 넓은 인간관계에서는 아마 열의 셋 정도가 고양이인 것 같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이들도 내 주변 집사들 중 절반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들은 새 침구류(이불, 매트리스 커버 등)를 주기적으로 구매하고, 성과급으로 굳이 다이슨 청소기를 산 후 기뻐하고, 2박 이내의 외박을 할 수 있음에 기뻐하(면서도 엄청 불안해하거나 보고싶어하)고, 산책을 시키는 것이 고양이에게 부적절함을 빌어 그 스스로도 외출을 삼갈 수 있음에 기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SNS에서 어떤 해쉬태그를 팔로우해도 개와 고양이와 관련된 사진과 영상이 넘치도록 나오는 세상에서, 반려동물이라고는 초등학교 숙제로 키워본 올챙이가 전부인 내가 어찌 감히 입이라도 뻥긋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집사의 집에서 하루 밤 묵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세 가지 특징 정도를 소개해 볼까 한다. 수많은 집사님들에게 실례가 아니 되길 바라며, 한국에 짧게 다녀온 어떤 외국인의 여행수기 정도의 느낌은 되길 바랄 뿐이다.
1. Fast & Furious (빠르고 사납다)
2. They Give and Take Away (고양이는 (잠을) 주시고, 고양이는 (잠을) 찾아가신다)
3.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알러지와 털)
가끔씩 친척들이 개를 키우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개 있는 집은 몇 번 가봤지만 고양이가 사는 집에 가 본 적은 없었다. 그날도 고양이를 만날 목적이었다기보다는,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시간은 새벽이었고 주변에 연 술집이 없었다. 그리고 왠지 술은 계속 마셔야 했다. 그가 먼저 그의 집을 권했고, 고양이가 있는데 내가 가도 괜찮냐 물었고,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의 집에 도착했고, 불이 켜지고, 고양이들이 보이고, 눈이 마주치고,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글이 한참 진행된 이제야 하는 말인데, 난 동물이 좀 무섭다. 친척집에 가서도 개가 내 쪽으로 올 때마다 한없이 움츠러들었고, 무서움을 어느 정도 극복한 뒤에도 그들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남들은 개가 옆에 오면 한없는 의성어를 섞은 말들이 잘만 나오는데, 나는 동물들에게도 낯을 가린다며 사람들이 어찌나 웃어대던지. 그 개는 느리게 다니면서 내가 피하거나 이 꽉 물고 대면할 선택의 여지를 주기라도 했는데, 이 고양이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다, 파바박 하면서 뛰다, 나에게 오나 싶더니 내 다리 사이를 넘어 사료를 먹으러 다녔다. 자기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집사는 저기 앉아 있는데, 옆에 왠 커다랗고 시커먼 이상한 존재가 있으니, 이들의 행동은 (집사의 주장에 따르면 평소보다는 많이) 격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미친 듯이 뛰던 고양이가 집사 근처로 오고, 집사가 들어 올려 안아주고, 고양이는 갸르릉 거리고, 집사가 나도 안아보라며 나에게 넘기고, 고양이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그 행동을 이어했고, 내가 거의 지쳐 쓰러질 때쯤에야 그들은 나를 '위험하지는 않은 인간'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적어도 내 앞을 천천히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리 고마울 줄 나는 몰랐다.
(주_Fast and Furious는 영화 <분노의 질주>의 원제. 고양이들보다 조금 느린 자동차들이 나옴)
천천히 걸어 다니기 시작한 후의 관계의 진전은 놀라울 정도였다. 앉아있는 내 위에 먼저 올라와 갸르릉 거릴 정도가 되었으니. 물론 내가 그게 좋아 쓰다듬어주다 한 번 안아볼라 치면 귀신같이 알고 도망가긴 하더라만.
잠들 때가 되었는데,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어느 정도 친해졌다지만 고양이 두 마리(정말 높이도 뛰어오르고 멀리도 날아다니는)가 활보하는 곳에서 안전하게 잘 수 있을까? 누워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데, 발목에 아주 작은 느낌이 났다. 내려다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목을 혀로 할짝할짝하고 있었다. 간지럽지도 않고, 누가 내게 호의적인 스킨십을 하고 있다는 딱 그 정도의 느낌. 다리 위에 올라왔다가 할짝하다가를 반복하는데 그 따뜻한 느낌 덕인지 넋 놓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 이래서 고양이를 키우는구나. 왜 사람들이 고양이를 키울 때 연애를 배제한다고 여기곤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아마 이 몇 년 간 가장 편안하게 잠들고, 가장 불편하게 깬 잠이 그때 아니었을까. 그렇게 편하게 잠들었는데, 무언가 단단한 것이 내 머리를 '퍽'하고 친 덕에 매우 아프고 놀라 퍼뜩 잠에서 깨었다. 떨어진 것은 천장 가까운 높이의 선반에 놓여 있던 달력이었고, 떨어뜨린 이는 당연히 고양이었다(할짝이던 아이 말고 다른 고양이).
그날에 체험한 고양이는 평소에 잠을 잘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나에게 꿀잠을 주시고, 잠을 잘 깨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에게 벌떡 일어남을 주시는 존재였다. 누군가 우스개로 '사람이 개에게 밥을 주면 개는 저 사람이 신이라고 생각하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고양이는 자기가 신이어서 이 사람이 나에게 밥을 준다 생각한다'라고 하던데, 나의 만성적인 괴로움을 한 방에 해결해 주는 능력은 가히 신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주_He Gives and Takes Away는 '신은 주시는 이고 찾아가기도 하시는 이다'는 뜻으로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였으며, 미드 '웨스트 윙' 속 연설 등 많은 곳에서 활용됨)
고양이의 신묘함 덕에 상쾌하게(?) 맞이한 아침에, 고양이들과는 아주 편한 사이가 되었다. 두 마리 모두 날 거부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낯가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집사가 일어났고, 내가 집에 갈 정류장을 배웅할 겸 해장도 할 겸 나가기로 했다.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어, 형 근데 고양이 알러지 없네요?"
아, 고양이 알러지라는게 있었구나. (놀람 1) 근데 저 인간은 그걸 사전에 안 물어보고 날 여기 데려온 거구나. (놀람 2) 참 평안하게도 "아 알러지 있으면 뭐 재채기 좀 나고 두드러기 좀 나고 콧물 좀 흐르고...."라고 말하는구나. (놀람 3)
어쨌거나 고양이 알러지는 없으니 된 거라며, 아주 쉽게 설득이 된 후 집 밖을 나와 해장국을 먹었다. 갑자기, 조금씩 몇몇 부분이 가려웠다. 이거 알러지 아니냐며, 알러지가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아주 특정 부위만 살살 간지럽고 가렵게도 오냐고 물었다. "아, 옷에 털 박힌 걸 거예요"라는 대답이 또 참 태연하게도 왔다. 그래, 오늘 아침에 좀 친해졌다고 막 안고 그랬지. 어제 벗어 놓은 양말 위에 뒹구는 걸 내가 봤었지. 내가 잘못했지 그래. 하지만 괜찮아. 알러지가 없으니까.
(주_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작년 말 영화로 갑자기 다시 떠버린 명밴드 Queen의 노래)
상술한 세 가지는 고양이들에 대한 첫인상을 복기하며 굳이 분류해본 결과로, 저 이외에도 그날 그들과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 - 연애와 고양이- 를 이어갈 능력이 되어 이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고양이를 주제로 한 글에서는 아마도 고양이를 들이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고민들과 그 나름의 사연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 후로 몇 번 더 만난 그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는지, 그럼에도 내가 주저할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 어쨌든 지금도 연애도 안 하고 고양이도 안 키우니까. 어쨌거나 그 아이들은 정말 귀여웠다.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