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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n Apr 15. 2019

연애와 고양이 - 날카로운 소개팅의 추억

 싱글은 왜 연애 대신 고양이를 고민하게 되었나


어느 술자리에서 소개팅 이야기가 나왔다.

소개팅을 싫어한다고 했더니, 누군가 답했다.

"아, '자만추'시구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유형이란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다고 했더니,

그 이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어디서 만나요?"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소개팅은 하지 않는다. 섣불리 나섰다가 괜히 지인들과 멀어진 적이 있어 주선도 하지 않는다. 그 당시 근무하던 팀은 놀랍게도(?) 나를 제외한 10명가량의 팀원이 모두 기혼자였다. 나의 마지막 연애가 끝난 후, 소개팅을 해주시겠다는 선의가 많았지만 정중히 거절해 왔었다.


작년 이맘때, 그때 그 소개팅은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보통은 둘이 있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보거나, 사내 메신저 내지는 카카오톡으로 오기 마련이던 소개팅 제안이 하필 그때는 모두가 들릴만큼 큰 목소리로 와서였을까. 보통은 한 번 거절하면 다시 오지 않던 제안이 유독 포기 없이 계속 와서였을까. 그 공개된 자리에서 팀원들 사이에 '감히 팀 내 유일한 싱글이 소개팅을 재차 거절한다'는 괘씸함의 공감대는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결국은 그 주 주말에 소개팅을 하겠다며, 상대는 누구냐 물었다.


소개팅에 상대는 주선자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소개팅남을 찾는 브로커 역할이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신상정보와 연락처가 끝. 주선자랍시고 오지랖 부리다 친구를 잃어본 입장에서 꽤 괜찮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와 누구는 참 잘 어울릴 거야'라는 촉은, 매우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예리하게 적용하는 것 같다. 그 선배가 딱히 그런 촉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외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의 목표와 기대는 오직 하나였다. 


'무사히 마치기'.




네이버에 '소개팅 ㅈ'까지만 치면 '소개팅 전 카톡'이 자동 완성되는 것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가움이었던가, 동질감이었던가. 검색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그러했던 것도 같다.


다만, 통성명 등의 자기소개나 만남의 일시 장소를 정하는 에티켓 정도를 알고 싶으면 네이버보다는 경험 많은 지인에게 물어볼 일이다. 네이버에서 '소개팅 전 카톡'을 검색한다면, 무려 '필승 전략', '미리 점수 따는 법', '누구나 성공하는 법', '초반부터 매력을 날리자'는 픽업아티스트들의 비기를 엿볼 수 있다. 비기랄 것이 뭐 대단한 게 있지도 않다. 그나마 타당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니코니코니는 프사로 부적절합니다', '일베 용어는 쓰지 마세요' 따위의 것들이다. 그 외의 것들은, 아무리 나여도 절대 따라 해서는 안됨을 쉬이 알 수 있는 끔찍한 내용들이었다.


인사를 하고, 일시와 장소를 정하고, 그때 그곳에서 만나면 끝날 일이야,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후회했다. 픽업아티스트들의 글이라도 조금 더 정독할걸. 


소개와 인사를 나눈 후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마무리하려는데, 상대방의 카톡이 계속 이어졌다! 밥은 먹었냐는 둥, 그 메뉴를 좋아하시냐는 둥... (그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화요일에 통성명하고 약속 잡았으면, 토요일 즈음에 리마인드 하고, 일요일에 만나면 되는 것 아닌가? 각자의 당일 일정 말고는 대화 소재도 없는 사이 이건만, 이 온라인 대화는 화수목금토... 계속 이어져 갔다.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멈추려는 시도는 실패하였고, 외려 '친구를 만나야 하니 좀 기다리시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라는 배려 넘치는 메시지까지 받아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렇게 어느 봄날의 일요일 오후 1시, 연트럴파크의 어딘가에서 식사를 하며 만나기로 했다.

바람직한 소개팅 코스.

다만 너무 바람직한.



파스타집을 예약했다. 대로변에 있는 식당이었다면 그 집에서 만나자 하고 기다렸을 테지만 연트럴파크의 대로변에는 소개팅을 하며 식사가 가능한 곳이 생각보다 없었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 대신 좀 더 넓은 공터에서 기다렸으면 좀 더 나았으려나. 아니면 일단 대로변의 아무 가게에서나 만나고, 거기서 이동했으면 괜찮았으려나.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는데, 만날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나는 지금 어느 건물 앞에서 무슨 옷을 입고 있어요.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아, 찾았어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과장도 없이, 십 수 명의 사람이,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나와 같은 건물 앞에서 전화기에다 대고 열심히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인사를 했겠구나. 둘 다 많이 놀랐겠구나. 이렇게 입고 온 내가 잘못한 거구나. 


우여곡절 끝에 만나, 예약한 곳으로 갔다. 두 사람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잘 준비된 곳이었다. 예약을 잘한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단지 낯가림 이외에도 소개팅을 불편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예 모르는 사이의 두 사람이 너무나 가까운 사이가 되고자 할 때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갑자기 처음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이 아직은 너무 생경한 탓이다. 다들 그렇게 잘 만나서 잘 사니 굳이 꼽자면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만. 사실 저 낯섦도 결국은 낯가림을 괜히 개똥철학마냥 풀어 늘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도 같다. 


어쨌든, 시작을 해야 한다. 머리에 많은 고전 질문들이 스쳐 지나간다. 고향은? 취미는? 이상형은? 직장은 얼마나 거지 같음? 등등. 그리고 그때, 등 뒤의 테이블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그래. 테이블이 너무 두 명이 어색하지 않게 앉기 좋은 넓은 원형이더라. 예약을 할 때 인원수를 말하기도 전에 두 명이시냐 묻더라. 예약을 하느라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이 동네에서 소개팅하면서 갈 만한 곳이 다 거기서 거기 같더라.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만나 달리 어딜 갔겠나.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지. 그때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은 모두 남녀인데, 그중 연인이나 가족으로 보이는 친밀함은 없었다. 소개팅을 수락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카톡과 힘들었던 만남 등을 거쳐) 지금까지 나름 어렵사리 내 인생의 첫 우주(?)를 개발해 왔는데, 그것이 이리도 흔하디 흔한 클리셰 덩어리였다. 마치 '내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치열하게 살아내었더니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습니다.'라는 이야기처럼. (그러면 분수에 맞게 잘 준비한 건가)




그날 나눈 대화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말이 끊겼었는지, 끊지 않으려고 횡설수설하다 더 이상한 말을 해버렸는지. 어쨌거나 밥을 다 먹은 뒤 커피를 마시고, 저 멀리 외국에 유학 간 친구가 짧게 귀국을 해서 꼭 만나야 한다며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어땠는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벌건 대낮에 시작한 소개팅이 두 시간 만에 끝났으니 결과적으로는 망한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내 면전에서는 욕을 하거나 물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무사히 끝내기'는 아마도 성공한 것이리라, 고 혼자 믿었다.


주말이 지나 후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그리도 목소리가 우렁찼던 주선자 선배가, 굳이 날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매우 미안한, 내지는 민망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사람 같은데, 말할 때 무슨 말하는지 잘 모르겠대." 


그랬겠지. 말하는 나도 몰랐는데.


그래도 앞에 좋은 사람 같다는 전제라도 붙이게는 했으니, 적어도 '무사히 끝내기'는 성공한 것이구나, 는 안도감과 함께 허탈함이 밀려왔다. 한 주 내내 소개팅을 고민하고 걱정했던 게 괜히 아까웠다. 나름 토요일에는 근처 답사도 갔었는데,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그 일요일에만 상영했었는데. 사실 그 동네는 냉면이 맛있는데. 


'처음 만나는 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언제나 참 지난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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