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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Oct 14. 2022

선천성 오름

등반과 자유

선천성 오름

 

“알피니즘 역사를 살펴보면 등반은 자유의 한 형태였다. 신체적 자유이자 철학적 자유. 그 자유를 궁극적으로 경험하려면 단독으로 등반해야 했다. 제약도, 속박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알피니스트 & 역사학자, 버나뎃 맥도널드-


등산이 근대 이후에 출현한 인간 활동의 한 형태라면, 등산은 역사적 근대 ‘개인’의 발견과 관계 깊다. 자유로운 개인이 행하는 자유 경험으로써의 등반이 알피니즘의 역사이자 현재이므로. 이 문장의 이해를 위해 조금, 많이 애둘러 가본다. 미리 주의컨대, 오로지 개인적인 생각을,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철학 위주로, 산과 자유를 매개하기 위해 정리하는 차원이니 이제부터 울려 퍼질 헛소리에 유의하라. 


존재는 불안하다. 인류가 철학하는 순간부터 존재에 대한 인식의 발로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유에서 무로 스러져가는, 태어난 것들의 숙명 같은 것이다. 그 두려움은 살기 위한 방편을 찾고 묻고 탐색한다. 인간은 가까스로 사는 중에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놓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 해답이 인간 근원을 태초의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물리, 천문학적 해석이고, 철학적 방법이 형이상학이며, 종교적 방법이 서사와 신앙이다. 이 세상은 물로 이루어졌다는 탈레스 이후로 습기, 원자, 이데아, 불, 먼지 등 무수한 궁극이 존재한다는 철학자가 생겨났다. 아쉽게도 그들의 주장은 알 수 없고 증명될 수 없는 것이어서,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이 없던 시기,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제일원인에 대한 무수한 답을 내놓았으나, 명멸했다. 


다른 성급한 사람들은 이야기를 가져온다. 이 세계의 궁극의 원인을 찾기 위해 동원된 신화적 서사는 강력한 매체였다. 사람의 눈과, 음성을 매개로 강력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져왔으니 신앙이 된다. 신앙의 세계에서 궁극의 원인을 찾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을 쓰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신적 운명을 꿰어 맞춘다. 고백록의 신앙적 세계관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톨릭의 이야기 세계를 펼쳐보였다. 서구에서 천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존재의 궁극은 오로지 바이블에 쓰여진 서사를 필연적 사실로 여겼다. 친퀴첸토(1500년대, 16세기)의 끝 무렵, 존재의 궁극을 찾기 위해 존재 너머의 세계를 헤매는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형이상학 전통과 가톨릭의 신앙적 세계관은 17세기 르네 데카르트라는 사람에 이르러 비로소 약간의 균열을 보인다. 


때는 16세기 벽두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 천문학 체계를 주장하던 시기였다.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인간의 눈으로 실제 하늘을 관측하며 지동설을 지지한다. 무엇보다 뉴턴이라는 거인이 나타나 과학적 대발견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인간들 사이에서, 천 년을 굳건하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신 존재’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무너져가던 때였으니, 데카르트의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철학적 회의주의는 시대가 요청한 필연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궁극을 ‘성찰’하던 끝에 데카르트는 인간 개인의 의식적인 사유가 존재의 제일 원인임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신을 버리진 못했는데, 신을 붕괴시킬 악역을 칸트에게 넘긴다. 


칸트는 더 나아간다. 뉴턴적 세계, 과학의 대발견 시대에 그가 직면한 시대적 문제는 자연과학이라는 합리성 앞에 놓인 초라한 신이었다. 사람들은 존재의 궁극은 신이라고 말했고,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신앙고백과 함께 신은 완전하다고 말하지만, 태양을 도는 초라한 지구 안에 종속된 생물종의 하나임을 자각하면서 각자의 내면에서는 서서히 신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신앙고백과 자연과학은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종교에서 벗어난 세속주의 국가가 출현하기 시작했던 시대적 상황은 신앙과 과학의 분리를 심층 설명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저작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간 존재의 궁극은 신과 접점을 찾을 수 없음을 우회하여 주장한다. 오로지 감각에 의존하는 자연적 존재인 인간을 짚어낸 것이다. 


사람들은 칸트가 신을 은밀하게 없앴다고 말하지만, 그는 신을 없앤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 앞에 초라해진 신을 신앙 자체로서 구해낸 철학자로 보아야 옳다. 그는 ‘판단력비판’을 통해 이전의 저작에서 주장한 ‘자연적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매개한다. 그로 인해 이제부터, 세계의 궁극으로서의 신은 그 윗자리를 인간의 자유에 헌액 한다. 신을 밀쳐내고 이 세계에 ‘개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신정神政이 아니라 개개인의 합의가 필요한 것이며 더는 신앙이나 종교의 맹신으로 해결해선 안된다는 메세지를 던진 것이다.


마침내 ‘개인’과 ‘자유’가 인류 앞에 도래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신을 찾았건, 누구의 신이건, 종교든 과학이든 할 것 없이 궁극의 제일 원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빅뱅의 빛을 거슬러 계속 올라갈 것이고 철학자들은 존재 너머를 탐구해갈 것이다. 무無로 스러지는 허무를 대대로 견디며 말이다. 살던 곳을 떠나며, 살던 곳에 눌러 살며, 이리저리 옮겨 살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를 키우고 늙어가며 공개적으로 또는 내면적으로 충격적으로 혹은 잔잔하게, 우리는 자신의 궁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궁극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자유다. 그리하여 자유는 인간 내면에 숨은 신일지도 모른다. 그 자유를 체험하는 자, 어느 역사학자의 말 대로 ‘등반은 자유의 한 형태, 신체적 자유이자 철학적 자유. 그 자유를 궁극적으로 경험하’는 등반가, 제약도 속박도 없이 기암절벽을 홀로 오르는 등반가는 오랜 역사적 사유를 이어받은, 추상적인 자유가 의인화된 현실태다. 오르는 자, 그는 숨은 신을 찾은 사람. 아, 삶의 절정을 자유롭게 누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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