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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그 아름다운 삶의 펜들럼

by 장재용

나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뇌리에 박힌 멋짐 폭발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늘어진 자일과 듬성듬성 그러나 일정하게 걸린 퀵드로우의 쭉뻗은 등반선, 오버행을 으쌰 넘어설 때 출렁이며 맞부딪히는 프렌드 소리, 넓은 등판을 보이며 왼손은 곧게 버티고 허리 뒤로 돌린 오른손으로 바른 초크가 바람에 하늘하늘 날려갈 때, 그 희디흰 가루가 바위 아래 넋 놓고 지켜보던 내 뺨에 닿을 때, 나는 고양이 입처럼 가득 열어 소리 없는 탄성을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질렀습니다. 선망이었지요, 워너비였습니다. 이번 생에 그리될까 싶은.


그때, 내 입술은 붉었고 마침내 먼지가 되더라도 저곳에 내 전부를 갈아 넣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지배했지요. 억지 크랙에 오른손을 깊이 찔러 넣기 위해 무수한 날을 바쳤고 위계질서 고빗사위를 넘기 위해 손가락 끄트머리 힘과 땅까지 떨어질 간댕이를 키웠더랬습니다. 하나의 양초에 불을 붙였을 뿐이었는데 백만 개의 초가 내 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 앞에 꿈은 납작하게 접혀 버렸고 당면한 일상의 삶을 사는 건 내안의 멋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여긴 고향도 아니고 이젠 치기어린 나이도 아니게 됐습니다. 열린 문틈으로 고양이 지나는 찰나가 세월이라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순식간에 흘렀고 붉은 입술은 흰머리 성성한 늙발이 됐습니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산에 가자는 말. 산재이 산에 가자는 무덤덤한 말에 일상의 무대장치는 시간으로 쌓여 올려진 질료처럼 허망하게 무너지고 지난날 타오른 적 있던 그것, 내 심장에 당황의 불화살이 핏줄을 타고 F1의 굉음을 내며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작은 초 하나를 켰습니다. 나는 사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소한 기회 앞에서 일상이라는 벽 뒤에 어줍잖게 숨고 한발 빼는 비굴함을 보이지 않아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그리하여 25년 만에 기존C를 오르게 됐습니다. 위계질서를 손톱을 걸며 다시 오르고 뜨거운 여름밤을 상데미 바위에서 지새웠습니다. 잘 자란 후배들과 땀을 섞고 나의 사람들을 다시 뜨겁게 안았습니다. 안착, 출발, 하강을 부채가 떠나가라 씩씩하게 외치며 힘들기는커녕 알 수 없는 웃음과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세월을 바쳐 피아노를 연주한 노회한 음악가가 되어 다 연주할 때까지 건반을 더듬듯 바위를 어루만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주 커다란 벽을 오르기 위해 떠납니다만, 끝까지 못오르면 어떻습니까 나는 지난 훈련의 기억들로 이미 아름답고 근사한 등반을 마쳤습니다.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삶은 늘 추락하는 순간을 품고 있는 법, 떨어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시원하게 웃어재낄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됩니다.

기획, 원가, 보고 같은 단어들은 크랙, 캠, 자일로 바뀌고 학업, 직장, 사업을 잠시 전폐하고 두 번 다시 못 올 시간을 살다오기로 작정했습니다. 앨캡과 하프돔에서는 바람이 꽤 분다고 합니다. 어디서, 언제부터 그 바람이 났는지 그 연원을 거슬러 가보려는 노력을 제쳐두고 산이 내 몸에 불어넣은 그 바람을 시원하게 맞고 오겠습니다. 나에게 온 이 행운을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고 일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모를 시간을 살다 오겠습니다.

찰칵, Nose, Top out Tree에서 구정물이 흐른 듯 땀이 말라 굳었고 치렁치렁 걸린 장비, 시커먼 얼굴, 때낀 장갑, 피가 고였다 마른 손톱,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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