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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Jun 10. 2020

통계라는 야만

인간 족속의 점에 지나지 않는 개체로서의 나, 그 유한성의 인식

통계라는 것이 무자비, 무가치적인 신적 관점이라는 생각이 문득, 불현듯, 갑자기, suddenly 드는 건 인간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헤어짐에 대해 덤덤하게 아무런 심장의 요동 없이 한 개체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들을 숫자로 표현하여 그안에 어떠한 감정이나 기쁨, 행복, 슬픔, 노여움 등이 틈입할 수 없는 전 우주적인 전개에 편승하는 뭉뚱그려진 전지적 절대자 시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통계의 숫자를 참고하여 제도적 손질을 고민하는 국가는 영원히 전개될 인간의 삶들을 전제했을 터인데 그것이또 참으로 슬픈 일이기도 하겠거니와 이유인즉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 개인의 자유는 또 얼만큼이나 억압될 것인지 또 다른 개인은 다른개인의 억압된 자유를 얼마나 자신의 자유로 환원하여 향유할 것인지에 생각이 이르니 평생 자유를 갈구하다 죽을 인간이 어른거리기 때문이겠다. 정부, 국가, 기관은인간 말하자면 인간이 모여 만든 사회에 얼마나 유익한 것일까. 또 얼마나 유해한 것인가.


한 인간의 삶은 우여와 곡절의 여정 迂餘曲折(멀지만 결국 다다르고 굽어지며 꺾이는) 을 거칠 텐데 어느 한 시점을칼과 같이 잘라 이번 달 인간들의 삶과 곡절은 이와 같다고 밝히는 인구통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만하고 야만적이며 전체주의적이고 그 쓰임에 따라자본주의적이다. 또 그 정보를 가장 유익하게 활용할 집단이 약탈 정치가들이라면 악랄한 착취에 기본 자료가될 테고 피지배를 당하는 개인으로서는 잔인한 폭압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내가 오버하는 것인가?


비로소 다짐하게 되는데 내 개인적인 가치를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나의 내적 에너지를 집단에 헌납하는 일은 벌이지 않을 테다. 안으로 충만한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북극성으로 향하는 삶을 위해 점진적으로 하루도 거르지 말고 전진할 것이며 서두르지 말되 느긋해서도 안 된다. 단 한 줄로 명시화 되는 통계의 하나로 내 삶이 표현되고 급기야 그것으로 마감된다면 나는 그야말로 소모재의소모적인 작은 에너지 단위였을 뿐이게 되는 것이다. 하기야 미약하다 생각 하는 그 존재 이상의 무엇이라말 할 수도 없다.


그러나,그럼에도 출생과 죽음이 연도별, 월별로 유사한 추이를 밟아 오는 걸 보고서야 무서움이 엄습한다. 죽을 때가 되면 죽고, 태어날 때가 되면 태어나며,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이 우리가 보아오던 일요일 오전 지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꼭 그렇게 끝나고 시작되고진행되는 거였다. 그 속에 인상을 쓰며 인색하게 굴고 증오하며 분노하고 또는 기뻐하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하는 많은 무리 속 인간 중에 하나인 나는, 마찬가지로 태어났으니 살고, 살았으므로 죽어야 하는 통계 그래프의 점 축에도 끼지 못하는 하나의 개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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