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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Feb 25. 2020

세월이 카톡에게 (월급쟁이 四龍天下 마지막 회)


3부: 세월이 카톡에게 (월급쟁이 四龍天下 마지막 회)


어느 날, 갓 입문한 신입사원이 성해바장의 자리 옆에 와선 몸을 꼬며 주뼛거렸다. 세상 좋은 웃음으로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어렵게 입을 땐 신입 동자가 말했다. “저기, 팀장님. 어, 그러니까 어, 카톡 아이디를… 알 수 있을까요?” 별 것도 아닌 말을 그리 어려워 하느냐. 싱거운 아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카톡 아이디를 알려 주니 신입 동자는 꾸벅 하고 잽싸게 총총 걸음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5분 뒤, 방금 카톡으로 ‘친구’가 된 신입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팀장님, 이번 주 주간업무보고 자료를 보내 주세요. 마감이 세 시간 지났습니다.’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성해바장. 물정 모르는 신입의 치기라 생각하기엔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났고 딸꾹질 같은 까톡 소리가 성해바장의 뇌리에서 까똑, 까까까똑 반복해서 울려 대는 것이다. 처음 맞닥뜨리는 상대였다. 


성해바장의 비언어 장악술이 상대에게 가할 수 있는 내상은 눈빛, 실룩거리는 콧구멍, 눈썹의 율동, 비죽거리는 입 등으로 인한 내면적 공포감을 극에 달하게 하여 치명적 감정 손상을 입히는 것이 그 요체인데 이 비술이 먹히려면 서로가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 신입 동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비대면 대화술로 성해바장의 권법을 원천적으로 막아 낸 것이다. 충격은 오래 갔다. 신입 동자의 권법을 복기하며 곱씹는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어. 사내전화를 활용하지도 않았다. 얼굴 보며 말하는 걸 두려워했지만 카톡에선 당당했단 말씀이야. 까톡이란 무엇인가.’ 그날 밤, 자신에게 가장 충성스런 후배, 청룡엑신에게 하소연하며 통한의 패배에 관해 털어 놨더니 청룡엑신은 한참을 듣고 난 뒤 말했다. 


“대의가 사라진지 오랩니다. 대천피왕을 보십시오. 화려했던 무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세상입니다. 근래 새로 들어오는 도반들은 말 섞기를 싫어합니다. 대의가 사라진 세계에 까똑이 있습니다. 요새는 까똑이 대의입니다. 아무리 용이 하늘을 가르더라도 연약한 까똑에겐 당하지 못합니다.” 


그랬구나, 그런 거였어. 성해바장은 홀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단 말이지. 바라보며 얘기하기를 꺼려하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오로지 카톡이 대세인 세상에 감정도 인격도 슬픔도 기쁨도 배려도 뒷담화도 경멸도 카톡을 통해야 가능하니 참나. 카톡이라야 편한 세상이 돼버렸겠다. 만나서 바로 코 앞에 앉아 있는 친구를 두고 대화는 카톡으로 하며 손가락만 빠르게 놀려대니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걱정하는 건 나의 오지랖인가. 그러던 것이 결국 이 세계, 엑셀, 워드, ppt가 대의인 이곳까지 틈입했고 오로지 카톡 안에서 활공하며 대국을 펼치게 됐단 말씀이야. 옳거니, 카톡이 대세로군. 노래방 마이크를 버리고 카톡으로 가자.


카톡이 그렇게 강성했단 말인가. 이튿날부터 카톡을 뚫어져라 야리며 생각했다. 무섭게 떠오르는 저 것을 활용하면 나 또한 날개를 달게 되리라. 바이브레이션에 더한 비기를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 성해바장은 카톡으로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재미를 붙인 관성을 이기지 못해 급기야 사장에게까지 카톡으로 업무보고를 하게 되니 한 두 번 인내심을 갖고 참아오던 사장은 마침내 폭발했다. ‘부장이나 되는 놈이 분별 없이 어린 놈들과 덩달아 카톡질을 해대느냐’며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스트레이트를 얻어 맞은 성해바장은 팀원들에게 앞으로 모든 보고는 대면으로 할 것을 천명했고 때마침 그때 ‘친구’ 먹었던 그 신입사원의 보고를 받으며 ‘그때의 분노를 돌려주마’며 분노의 붉은 펜을 좍좍 그으며 말했다. “도대체 맞춤법을 알기나 한 건가. 띄워 쓰기도 모르고…”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고 그 어린 놈은 미끼를 문 물고기를 스냅으로 들어올리듯 성해바장의 모욕에 단숨에 맞선다.


“말 잘하시었소. 그 놈에 맞춤법, 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공께서는 주 52시간 시대에 겁 없이 야근을 시키셨나.”


귀를 의심하는 표정, 뭐라, 지금 죽여야 하나. 아니다. 무공의 깊이가 맞지 않는 자와는 겨뤄선 아니 되는 법, 순간 망설이는 성해바장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오르고 대천피왕의 아스라한 뒷모습과 운무워달의 쓴 웃음이 휙하고 스쳐간다. ‘어린 놈마저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랬군, 내 차례가 온 것인가.’ 오로지 밤에 일이 시작되던 성해바장이었다. 그마저 주52시간 제도가 시행되고 난 뒤 회식과 밤의 업무는 사라져 갔고 그의 비기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직접적인 업무 능력이 떨어지니 퇴근 후부터 빛을 발했던 그의 능력도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때는 어찌 이리도 기가 막히게 맞추어 지는가, 그의 능력이 바닥을 칠 무렵 공교롭게도 회사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부장 이상의 무공을 지닌 자부터 집으로 보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던 때, 누구나 사무실 복도를 오가다 그에게 눈길을 던지며 퇴물취급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십 수년간 써온 멋진 만년필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사직서에 썼다. 믿음직한 등판 너머로 유난히 공들여 적은 ‘희망퇴직원’ 서류가 보인다. 천천히 정성 들여 서명까지 마치고 빠진 건 없는지 훑어본 후 사직서를 가방에 넣고 책상에 일어서서 사무실을 사진 찍듯 돌아보았다. 그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오후 3시경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말리기는커녕 그에게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한다. 이틀 전, 인사부서에서 개인별로 e-mail을 보내 사직을 권고했었다. 그는 큰 덩치만큼이나 이목구비가 분명하여 선한 인상이다. 일을 도무지 통달하지 못해 오히려 일 앞에서 물불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 성격 탓에 적도 많고 친구도 많았다. 그만큼 활기찼다. 월급쟁이 18년에 이제야 일에 눈을 뜨게 되어 일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거였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엊그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맡은 일에 청룡엑신을 시켜 회의를 소집하고 막힌 문제를 풀어가려던 그였다. 그러나 이틀 뒤, 18년을 다니고 열 달 치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그는 회사를 떠났다. 그렇게 회사를 떠나 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그 해 기 만 명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해Vibration장의 마지막을 위해 옥상에 모였던 것이다. 여여들 하셨나. 대천피왕이 말한다. ‘비록 그대의 시대는 저물지만 적어도 나훈아의 노래를 부를 땐 그대를 따라갈 자 없었소. 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그때까지 부디 목청 보전하시길’. 눈으로 도장을 찍듯 한 사람 한 사람 지긋이 보던 성해바장이 말했다. ‘또 봅시다. 주저 말고 톡 하시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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