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던 날

by 이규선

오늘 경기도 여주 종친회 가족공원에 있는 텃밭에서 종원들 12명이 모여 200평 가까이 되는 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참고로 종친회 부회장인 나를 비롯한 우리 종원들은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이화(의안대군)의 후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달리 종친회행사에는 웬만하면 너도나도 참석하였고,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종친회 사무국장이 지난 봄에 그냥 놔둬도 되는 노는 땅에 일부러 돈을 들여 일꾼을 사서 고구마를 심었고, 조만간 있을 종친회 시제때 1박스씩 나눠주려고 오늘 모이게 한 것이다.


사무국장이 고구마를 심는다기에 그때 나는 비용과 노고를 고려하여 즉, 경제성이 없기때문에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좋겠다며 반대의사를 표시했는데, 사무국장이 종친회를 생각하는 동조 분위기에 휩쓸려 결국 관철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서울은 비가 왔다가 개였고, 약속시간에 맞춰 중부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을 때 아내가 전화로 서울은 지금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그곳은 괜찮냐고 물었다.


고속도로에서 본 하늘은 쾌청했지만, 몇 분 안되어 여주톨게이트에 막 들어서니 오후에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8시 반도 안되어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있었고,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 마이갓! 일은 시작도 안했는데 비가 와서 큰일이네!


30분 정도 지나니 다행히 비가 끄쳐 우리들은 모두 작업복으로 갈아 입었고, 일부 종원은 장화까지 신었다.


말이 200평이지 눈으로 대충 보기에도 엄청 넓어 오늘 언제 다 마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밭을 덮었던 까만 비닐를 제거하고 이리저리 엉킨 고구마줄기를 낫으로 잘랐다.


이윽고 평택에 사는 종원이 경운기로 밭을 뒤집으니, 고구마가 줄줄이 사탕처럼 밭 위로 나왔고, 나는 하나 하나 떼어가며 고구마를 상자에 담았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고구마 캐기는 수확의 기쁨으로 재미도 있었지만, 조금 있으니 허리가 아팠고, 한숨을 쉬려고 잠시 일어서니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극히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농사와 거리가 먼, 완전 서울사람인 나는 무리하면 내일 아침에 몸살이 날 것 같았고, 새삼 농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일하는 중간에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다행히 큰비가 아니었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12시쯤 일을 마친 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같은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종원들은 오늘 고구마 수확은 날씨가 도왔고, 일등공신인 경운기가 아니었으면 아마 밤늦도록 일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고생했다며 나눠준 고구마 한상자를 들고 오후 4시쯤 의기양양하게 집에 왔을 때 아내가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베란다에서 신문지 위에 젖은 고구마를 말리려고 가지런히 내려놓으니 손가락 2배쯤 되는, 상품가치가 없어보이는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돈으로 따지면 2~3만원어치나 될 고구마를 캐러, 톨비에 휘발유값은 차치하고, 훍투성이 몸이 된 채로, 남들 다 쉬는 날에 고생한 보람이 이것뿐인가 생각하니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점심식사 때, 한 종원이 사무국장에게 빈 밭을 내년에 어떻게 활용할거냐고 물어보니, 그는 다음에는 땅콩을 심는 것은 어떠냐고 웃으며 얘기하였다.


나는 약간의 몸살기운을 느끼며 이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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