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에 서울 광화문에 있는 S교회를 다녔다.
그 때 광화문 주변에는 경기고, 서울고, 경기여고, 이화여고 등 소위 명문고등학교가 있어 S교회는 그들 선배들이 주름잡고 있었다.
그들은 예상대로 요즘 말하는 SKY대학을 무난히 들어갔고, 공부를 열심히 한만큼 그들의 미래도 탄탄대로였다.
그들 중에 검찰총장의 물망에 올랐던 이도 있고, 대학교수 종합병원 의사, 정부기관장, 기업 대표, 그리고 MBC TV 뽀뽀뽀의 뽀미언니까지 했던 선배 등 다양했다.
그 시절 대학때 내가 성가대원으로 봉사할 때 일이다.
어느 날 복학생이 우리 성가대에 새로 들어왔다.
머리가 살짝 벗겨지고, 키는 다소 작으나 단단한 체격이고,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지 약간 뻔뻔할 정도로 당돌한 면도 있는 선배였다.
대학성가대는 나처럼 고등부 성가대원들이 그대로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노래를 좋아해서 신입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는 보수적인 우리 성가대에 적응하려고 이곳저곳 감초처럼 끼어들었고, 차트 글씨를 잘 써서 성가대 소식지까지 본인이 등사해서 만들었다.
더구나 목소리가 좋아, 드디어 베이스 솔로가 되었다.
어느 새 그는 당당히 성가대 중심에 섰고, 우리 후배들에게 커피를 사는 등 선배로서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에 다니는 선배는 영어로된 경영학 원서를 허리에 끼고 다녔고, 옷도 점점 세련되게 입어 무언가 냄새도 풍겼다.
그는 성가 연습시간에 빠짐 없이 나왔고, 어느 날 지휘자선생님이 조금 늦는다고 연락왔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 나가더니 성가대원들 앞에서 보란듯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 곡은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다.
그 시절 남자는 커녕 여자 대학생들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우리는 그의 재주에 놀랐고, 한마디로 팔방미인이고, 여유있는 집안출신인 그를 부러운 듯이 다시 쳐다보았다.
그 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당시 유행했던 피아노곡을 쳤고, 우리는 그 선배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성가연습을 마치고 헤어지는데 교회 옆 길가에서 그와 한 여대생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싫다는데 자꾸 따라오며 귀찮게 하세요?"
~~~~~
그 후에 그 선배는 말없이 성가대를 떠났다.
코가 오똑하고 이국적인 마스크를 한, 이화여대를 다녔던 그 여대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아들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아침 FM라디오에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들으니, 피아노를 잘 쳤던 그 선배가 생각난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