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서

by 이규선


매번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에 갈 때마다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사계절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 좋다.


오늘 반차를 한 후에 집에 일찍 들어온 딸이 사 온 김밥과 떡볶이로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 모처럼 가족과 한강변을 드라이브하며 겨울의 낭만과 운치를 즐기고자 두물머리로 향했다.


다소 추운 날씨였지만, 춘천, 양평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화창한 날씨만큼 시원하게 뚫려 두 달 전 직장 후배의 팔당 별장을 갔을 때 2시간 넘게 걸렸던 주말 교통체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이런 맛에 드라이브하는 거야!"


따뜻한 시트를 온몸으로 느끼며 차창 너머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쓸쓸한 한강변 모습을 보니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40분도 안되어 두물머리에 도착했고, 여름이면 연꽃으로 유명한 '세미원' 고가도로 밑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주말도 아닌데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아 코로나 때문에 사람 붐비는 실내를 벗어나 경치 좋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두물머리와 키가 큰 갈대밭을 배경으로, 또 커다란 액자형 포토존 등 멋진 장소마다 사진을 찍으며 그동안 집콕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려는 듯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방송을 타서 유명해진 핫도그점은 이름처럼 핫해서 십여 명 손님들이 줄 서 있었으나, 외관이 세련되어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는 코로나 방역 2단계라 문을 닫은 듯 조용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 가족 셋은 두물머리 초입에 흡사 감옥 창살처럼 우뚝 서있는 나무기둥 7단계 중에 2단계인 20센티(날씬) 공간을 모두 통과하여 호리호리한 몸매를 재확인하였다.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양수리)'로 쓴다.


이곳은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며 결혼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고, 주변에 식당과 예쁜 카페가 많아 서울 등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나는 딸에게 수년 전 어느 봄날 팔당역에서 이곳 양수리까지 엄마와 둘이서 마치 영화 주인공처럼 앞뒤로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온 얘기를 하며, 빨리 애인을 만들라고 살짝 압박을 주었다.


우리는 넓은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을 천천히 거닐며 갈대와 억새를 얘기했고, 두물경에서는 운치 있는 윤슬을 바라보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모습과 어둑해질 때 일몰 하는 붉은 하늘을 잠시 그려보았다.


초겨울에 한적한 들판을 오랜만에 산책하니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 노래가 입가에 맴돌았고, 멀리서 가곡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남성합창단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집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에 함박눈이 쌓이네


출처 : "고향의 노래" 김재호 시, 이수인 곡


이 곡은 노래 가사도 우수하지만, 추운 겨울에 포근한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리듬과 환상적인 음정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렇게 풍광이 멋진 이곳에 와 보니, 소설가 황순원의 '소나기마을' 인근에 10년 전에 세컨드 하우스로 손수 한옥을 지은 직장동료 L과 30년 넘게 서울 영등포에서 살다가 아픈 아내의 건강을 위해 최근에 양평으로 이사 간 W를 생각하니 나도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만물이 소생하는 내년 3월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는 W부부의 전원주택에서 그가 직접 원두를 구워 만든 부드러운 커피를 맛보러 갈 생각을 하니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려진다.


오늘 우리는 12000보를 걸으며 그동안 부족했던 운동을 어느 정도 해결했고, 겨울이야기를 하며 쓸쓸하여 더 정겨운 들판을 이리저리 배회하니 가족애가 두터워진 것 같다.


"발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나를 채워주는 양평 여행"의 커다란 홍보간판을 뒤로하고, 추위를 녹여주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양평 수종면에서 서울로 향하니 미사리도 채 못 갔는데 고속도로는 이미 주차장이다.


나도 친구 L처럼 이 참에 양평에 조그마한 세컨드 하우스를 하나 만들까 보다.


이번 주에는 잊지 말고 로또복권을 사야겠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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