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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때문에 1년여 우여곡절 끝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이 오늘 밤 막을 내렸다.


난민대표를 포함한 세계 206개 국가, 조직에서 11,0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17일간 33개 정식종목에서 메달을 다퉜다.


한국 여자배구가 극적인 드라마를 몇 차례 연출했지만 브라질과 세르비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4위가 되었고, 기대했던 남자 야구도 도미니카에 힘없이 무너져 안타까웠다.


그러나 개인경기에서는 탄탄한 기본기로 무장하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었고, 특히 젊은 선수들은 비록 메달은 없어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에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즐거워했다.


황선우(수영 자유형 100m, 5위), 우하람(다이빙 3m 스프링보드, 4위), 이선미(역도 +87kg급,4위) 선수도 대단했지만, 나는 우상혁(높이뛰기 2m 35, 4위) 선수가 보여준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에게 '노메달의 아쉬움' 같은 수식어가 붙을 이유가 없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출전한 이진택이 기록했던 2m 29를 넘었고, 필드와 단거리 종목에서 들러리 역할을 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우상혁의 선전을 통해 육상 종목이 우리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여유롭게 관중석에 앉은 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뛰어넘는 순간까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올림픽이라는 무대 자체를 즐기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고, 아쉽게 4위에 머물렀지만 절도 있게 경례하며 마무리 짓는 그를 보고 금방 반했다.


육상 중장거리 1500m 올림픽 예선경기 도중 한 차례 넘어지고도 1등으로 들어와 세계를 놀라게 했던, 네덜란드 하산(에티오피아 난민 출신) 선수가 어제 여자 10000m 장거리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는 하산 선수가 뛴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았는데, 400m 트랙을 25바퀴 도는 코스라 나중에는 선두와 후미그룹이 한 바퀴 이상 차이가 나서 잠깐이었지만 그들이 뒤엉켜 한 그룹이 되어 뛰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경기를 보니, 저질체력에다 운동까지 젬병이었던 내가 대학시절 ROTC 장교 후보생에 지원했을 때의 웃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사상검사, 학교 성적과 더불어 기본이 되는 체력검사에 합격해야 하는데, 달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수류탄 던지기 등 10가지 종목이 있었다.


웬만한 검사는 간당간당하게 점수를 받으며 통과하였으나, 2000m 장거리 달리기는 나에게 아킬레스건이었다.


그 당시 나는 공교롭게도 체육학과 출신 20여 명과 함께 250m 트랙을 8바퀴를 돌았는데,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들은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마치 치타처럼 재빨리 뛰쳐나가며 나보다 한 발 앞서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그들과 거의 동시에 골인지점에 들어왔고, 점검관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연유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선수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소설가 박완서가 1977년에 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어느 날 우연히 마라톤 경기를 구경한 화자(話者)가 꼴찌 주자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져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선수를 응원한다는 내용이다.


지금부터는 꼴찌나 승자에 관계없이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삶에 만족하며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처럼 "행복한 밤이었다. 이제는 홀가분하다" 라며 외치는 세상에 살고 싶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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