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

by 이규선

나는 샤브샤브가 좋구나!


수년 전에 안양 큰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했을 때, 맛있게 드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매년 추석과 설날은 큰댁에 모였는데,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우리 3남매는 마포에 사는 모친을 모시고 조촐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결혼식 등 큰 행사를 제외하고는 그토록 정겹던 사촌들 얼굴보는 것이 가뭄에 콩나듯했다.


어제 안양에 있는 샤브샤브집에서 올해 94세가 되신 큰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였다.


멀리 지방에 있어, 일로 바빠서 25명 남짓 모여 아쉬웠지만, 우리 집안 최고령자인 큰어머니는 귀가 밝고 아직도 정정하시다.


큰어머니를 볼 때마다, 1970년 초에 무척 인기있었던 TV드라마 '아씨'가 생각난다.


여주인공은 1930년~1950년 사이에 지체 높은 양반댁에 시집와서 모진 세월을 겪는 여자의 일생을 보여주었는데, 한때 이 드라마를 보려면 문단속을 잘 하라는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대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이 드라마처럼 기품있고, 화려한 집안도 아닌, 대대로 가난한 소작농인 7남매의 맏아들과 결혼한 큰어머니는

더욱 더 힘든 세월을 보냈다.


딸만 8명의 장녀로 태어나 19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 150cm 안되는 작은 체구로 시부모님과 다섯 시동생들을 보살피며, 어려운 시골살림을 도맡았으니 그 고생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나이 들면서 이제는 4명 며느리 덕을 보려했으나, 자식들이 곳곳에 뿔뿔이 살고, 각자 일을 하고 있어 언감생심이었다.


천식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큰어머니는 몇년 전에 재발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해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살아나셨다.


지금 큰어머니는 주일이면 교회에서 지내시고, 동갑내기인 큰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안양시내를 누비고, 붓글씨에 일가견이 있어 서예동호회원으로 책도 내며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우리는 70세 이상 노인들, 50~60대 장년들, 그리고 10~40대 조카들 3그룹으로 나눠앉아 식사를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 무릎에 걸터앉아 턱수염을 만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록 중풍으로 74세에 돌아가셨지만, 당시 할아버지의 수염은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의 상징이었고, 그 자체가 품위였다.


그런데 올해 94세인 큰아버지는 그 멋진 수염도 없고, 175cm 큰 키에 늘 운동하며, 120세 삶을 꿈꾸며 오늘도 힘차게 사신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환갑잔치를 했는데, 지금은 칠순은 그냥 지나가고 팔순잔치도 눈치보여 가족끼리 조용히 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 샤브샤브집 계단에서 4대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즉시 카톡에 올리니 국내, 해외에서 리얼타임으로 회신이 왔다.


최고다! 멋지다! (화환사진까지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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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중반이신 모친은 외출할 때 '나도 여자니까' 하면서 항상 입술에 루즈를 바르고 세련된 복장으로 나간다.


얼마 전에 분위기 있는 연남동 카페에서 모친이 손녀딸에게 하신 말씀이 나를 미소짓게 한다.


''유민아!


여기서는 할머니라고 부르지말고, 그냥 아줌마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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